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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마흔이 된 당신에게 30년차 정신분석 전문의의 조언

by J____H 2023.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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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 병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일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고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는 인생이라고 그래서 무엇을 하는 것부터 화난다는 환자가 있었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제가 그 일을 하는 게 맞을까요? 했다가 후회하면 어떡하죠? 만약 일이 잘못되면요? 차라리 안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그녀의 간절한 표정을 뒤로하고 나는 말했다. 제가 점쟁이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건 알지만 그래도 조언을 해주실 수는 있잖아요. 만약 내가 그 일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을 한다고 해보자. 그녀가 과연 그 일에 도전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몇 달째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어떤 선택을 하든 잘 헤쳐 나갈 테니 용기 내어 딱 한 발짝만 내디뎌 보라고 했다. 잘못된 길이라면 아예 내딛고 싶지 않은 그녀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이미 몇 번 실패를 경험한 그녀가 많이 지쳐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계속 결정을 미룬 채 고민을 더 해봐야 시간만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게 옳은 선택이든 아니든 이제는 결정을 내리고 선택한 방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가서 경험을 해봐야 자신과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그렇게 꼼짝도 못 한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2001년 파킨슨 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난 직후였다. 파킨슨 병은 손발이 떨리고 근육이 뻣뻣해지고 몸이 굳는 증상이 나타나는 신경퇴행성 질환이다. 그래서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심지어 글씨를 쓰고 얼굴 표정을 짓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파킨슨 병을 묘사할 때 온몸을 밧줄로 꽁꽁 묶어 놓고는 움직여 보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는데 그 말이 꼭 맞다. 어떨 땐 한 걸음을 움직이기 위해서 옷이 땀으로 흠뻑 젖을 만큼 고생을 하기도 한다. 보통 파킨슨 병에 걸리고 15년이 지나면 사망하거나 심각한 장애가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는데 아직까지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 그저 약으로 병의 진행을 더디게 만들 수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불치병이라는 소리다. 의사다 보니 파킨슨 병에 대해 알고 있지만 그 병이 나를 찾아올 줄은 짐작조차 못했다. 하필이면 꿈을 펼쳐보겠다며 개인 병원을 차린 뒤 1년이 채 안 되었을 때였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이런 병에 걸린 걸까? 누구나 열심히 살겠지만 나도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 소울 메이트 같았던 친언니를 교통사고로 잃고 몇 년을 방학했지만 결국 잘 버텨냈고, 첫 아이를 응급실 환자를 돌보는 도중에 유산하고는 절망에 빠졌지만 잘 이겨내어 두 아이를 낳았으며,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일하랴 아이 키우랴 힘든 일도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단 말인가 너무 억울했고 세상이 원망스러웠으며 내 인생은 끝났다고 절망했다. 게다가 파킨슨병 환자들이 겪는 끔찍한 고통을 내가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아무것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절망한 채 누워 있는다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게다가 다행히 병이 초기 단계라 아직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은데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어났고 하루를 살았고 또 다음 날을 살았다.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왔다. 2014년 초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 병원 문을 닫을 때까지 진료와 강의를 하며 다섯 권의 책을 썼고,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해야 할 일들을 하며 충실히 살아왔다. 무엇보다 건강 관리에 힘쓴 덕에 아직 치매가 오지 않았고 사고력에도 문제가 없으며 우울증도 경미하다. 물론 몸 상태는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지만 그 속도가 느린 편이어서 이 책도 쓸 수 있었다. 내가 파킨슨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면 사람들은 대부분 참 안 됐다 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어쩌다 한창의 나이에 몹쓸 병에 걸려 이런 고생을 하는가 안타깝다는 얼굴이다. 그러나 나는 괜찮다. 병이 이미 내 건강에 많은 부분을 앗아갔고 앞으로 지적 능력까지 빼앗아 갈지 모르지만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이니 걱정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 그래서 걱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걱정으로 시간을 낭비해 버리기엔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다. 코앞에 있는 화장실에 가는데 5분 넘게 걸린 적도 있고, 몸이 굳어버려 옆으로 돌아 누는 것조차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24시간 내내 아픈 건 아니다. 고통과 고통 사이에는 반드시 덜 아픈 시간이 있고 약을 먹어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도 있다. 나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할지 상상하며 고통을 견뎌낸다. 그래서 그 시간이 되면 운동을 하고 친구와 수다를 떨고 산책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딸을 위한 떡볶이도 만들면서 내 일상을 즐긴다. 아마도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 누군가 내게 물었다. 미국으로 유학 가서 정신분석 공부를 더하고 죽을 때까지 의사로 살고 싶다던 꿈을 병 때문에 포기하게 되어 속상하지 않으냐고. 전혀 속상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지난 30년간 의사로 살았으면 됐다 싶다. 그러자 그가 나에게 또 물었다. 아니 그럼 아쉬운 건 없으세요? 후회되는 것도 없으세요? 돌이켜보면 후회되는 게 왜 없겠는가 그렇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 걱정이 별 도움이 안 되듯 후회 또한 별 도움이 안 되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한 가지 후회하는 게 있다면 인생을 너무 숙제처럼 해치우듯 살았다는 것이다. 의사로,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딸로 살면서 나는 늘 의무와 책임감에 치어 어떻게든 그 모든 역할을 잘 해내려 애썼다. 나 아니면 모든 게 잘 안 돌아갈 거라는 착각 속에 앞만 보며 달려왔고, 그러다 보니 정작 누려야 삶의 즐거움을 놓쳐버렸다. 아이를 키우는 기쁨도, 환자를 돌보는 성취감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닦달하듯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무엇이든 다 잘 해내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방치해 두었던 나 자신을 챙기며 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래서 컨디션이 좋은 날은 좋은 대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 그런대로 하고 싶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둔 일을 하며 하루를 재미있게 보내려고 애쓴다. 가끔 고통이 심할 때는 지치기도 하지만 괜찮다. 아픈 나의 손을 꼭 잡아주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하고 싶은 게 아직도 참 많다. 병 때문이긴 하지만 의사 일을 관두고 나니 또 다른 세상이 열렸다. 중국어 공부도 제대로 해보고 싶고, 진짜 끝내주는 요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싶고, 서해, 남해, 동해를 한 바퀴 쭉 둘러보고도 싶다. 이 책에 공개한 버킷 리스트는 10개밖에 안 되지만 내 마음속엔 더 많은 리스트가 있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에도 꿈꾸기를 멈추지 않아서인지 사는 게 재미있다. 앞으로 병이 다시 악화되어 책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더라도 나는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하면서 재미있게 살고 싶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어차피 사는 거 재미있게 살다 가면 좋지 아니한가.

 

 

지금껏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

 

오래전 일이다. 한 시골 할머니가 진료를 받으러 와서는 한참 동안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었다. 근데 원장님은 안 계세요? 아니, 내가 원장인데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는 걸까 싶었다. 알고 보니 내가 버젓이 흰가운을 입고 있어도 할머니 눈에는 의사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할머니가 살아왔던 남존여비 세상에서는 여자가 의사를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의과대학에서 여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30%를 넘고 그만큼 여의사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여자 후배들은 나를 찾아와 아이를 낳는 게 두렵다고 했다. 환자 보랴, 논문 쓰랴, 일도 산더미처럼 많은데 언제 아이를 낳고 키우느냐는 것이다. 아이를 잘 보살필 자신도 없는 데다가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소홀히 하게 되어 승진해서 밀리고 도태될까 봐 두렵다고도 했다. 그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도 워킹맘의 길은 아직도 힘든 측면이 많이 있다. 후배에게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다고 선뜻 권하지 못하는 이유다. 나는 인턴 때 대학 동기와 결혼했는데 원치 않게 곧바로 임신을 하게 되었다. 다들 힘든데 임신했다는 이유로 일을 줄여달라고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외과를 돌 때였다. 그날따라 중환자실에서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잇따라 벌어졌다. 환자 3명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위급한 상황이다 보니 동료와 선배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데 나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급한 대로 엠브백을 잡고 또 일이 터지면 달려가서 심장 마사지를 했다. 어느 순간 배가 뭉치는 걸 느꼈지만 아이가 무사하기만을 바라며 환자를 살리는 일에 매달렸다. 눈앞에서 환자가 죽어가고 있는데 나 임신 중이에요, 라며 뒤로 빠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다행히 환자들이 고비를 넘긴 그날 밤, 나는 하혈을 했고 끝내 유산을 하고 말았다. 처음이었다. 의사가 된 게 너무 후회되었다. 무리하게 심폐소생술만 안 했어도 아이를 잃지 않았을 텐데 배 속의 아이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한참을 울었다. 그 후로도 얼마 동안은 아이를 잃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내 힘들어했다. 그러나 정말 시간이 약인가 보다. 어느덧 나는 두 아이를 낳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의사 생활을 계속했다. 병원일 하랴, 집안일하랴, 두 아이 키우랴, 시부모 봉양하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남편과 가족들 모두 도와주지 않는데 네 가지의 역할을 다 하려고 하니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딴에는 최선을 다하는 건데 병원에서도 집에서도 그걸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엄마로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감히 힘들다고 말하지도 못했다. 그러는 사이 아이를 키우는 것도, 병원 일을 하는 것도, 집안일을 하는 것도 모두 다 숙제처럼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일들이 되어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버텨야 하나 한숨이 먼저 나왔다. 어느 순간 나는 웃음을 잃어버렸다. 왜 나 혼자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나 라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남편과 가족들을 원망하고 불공평한 세상을 원망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렇게라도 버티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내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무감과 책임감만으로 하기 싫은 숙제를 하듯 살았던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내가 지금껏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것, 그것은 바로 그때 삶을 즐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기쁨을 즐기기는커녕 행여 아이에게 부족하고 좋은 엄마가 안 될까 봐 스스로를 닦달하면서 살았고, 일의 기쁨과 행복을 느끼기보다 행여 뒤처질세라 쫓기듯이 일을 하고 공부를 했다. 삶을 즐기려고 마음먹었다면 시간을 분배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 가족에게 도움을 청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삶을 즐기려고 마음먹었다면 집에 가자마자 저녁 준비한다고 서두르기 전에 아이와 눈 한 번 더 마주치며 안아주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삶을 즐기려고 마음먹었다면 출근하며 하늘 한번 쳐다볼 여유를 가지고 환자들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누군가 나에게 삶의 즐거움을 포기한 대가로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그 시절에 가졌던 죄책감과 피해의식은 나의 기쁨을 앗아가고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으며,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죄책감과 피해의식에 시달릴 시간을, 삶을 즐길 아이디어를 내서 그걸 실천에 옮겼더라면 이렇게까지 후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를 하루 못 씻기고 재웠다고 해서 큰일 나지 않는다. 일이 많으면 하루쯤 시부모 저녁상을 못 차릴 수도 있는 법이다. 남편에게 아이를 봐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해도 된다. 그렇게 해서 얻은 시간에 친구들을 만나 밀린 수다를 떨어도 좋을 일이다.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듣고 싶은 음악을 들을 시간이 정말 없을까? 마음만 먹으면 끝없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삶의 즐거움이다.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내가 아는 한 워킹맘은 너무 지치고 힘든 날에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한 시간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가만히 있곤 했다. 가족들에게는 차가 밀려 귀가가 좀 늦어질 것 같다는 거짓말을 하고선 말이다. 나는 그녀에게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삶을 즐기는 것은 뭐뭐 해야 한다는 말을 줄이고, 뭐 뭐 하고 싶다는 말을 늘려나가는 것이 그 시작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못 당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그리고 의무감과 책임감만으로 살아가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눈앞에 놓인 과제들에 내 인생을 다 내어주기보다는 좀 더 멀리 보며 나를 더 아껴주고, 틈틈이 나에게 즐거운 음악을 들려주고 달콤한 휴식을 허락할 것이다. 완벽한 때는 결코 오지 않는 법이다. 나는 평생 생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헤맸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완벽한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내 삶에는 늘 빈구석이 많았고, 그 빈구석을 채우는 재미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 나는 가고 싶은 길을 갈 것이다. 준비가 좀 덜 되어 있으면 어떤가 가면서 채우면 되고 그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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