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입니다' 를 읽었습니다. 중심이 잡혀있는 사람의 특징,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 나만의 속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중심이 잡혀있는 사람의 특징
저는 항상 중심을 잡는 것에 대해서 꾸준히 고민해 왔습니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 부정적인 길로 쉽게 빠지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삶의 중심이 잡혀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흔들리더라도 중심이 잡혀있는 사람은 쉽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왜 살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왜 살아가느냐는 질문에 이어지는 또 다른 질문은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갈 겁니까?라는 것입니다. 무수히 많은 대답들이 존재하겠지만 중심이 잡혀 있는 사람은 왜 살아가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과 철학 즉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군대에서 축구를 하다가 무릎을 다쳐서 수술을 했다고 합니다. 수술 후에 열심히 재활 운동을 했더니 어느덧 조금씩 다리도 굽혀지고 근력도 꽤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계속해서 쩔뚝이며 도무지 편하게 걸을 수는 없었습니다. 언제쯤 나아지는 건지 낮기는 하는 건지 의구심이 들 무렵 물리치료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저 아직도 쩔뚝거리는데 이거 영영 못 걷게 되는 건 아닙니까? 나의 의구심이 담긴 질문을 들은 선생님은 이상하다는 듯 대 부르셨습니다. 지금 근력과 이 정도 각도로 다리가 구부려지려면 쩔뚝이지 않고 똑바로 걸으실 수 있습니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아니 불편한 건 아닙니다. 상현 씨, 그게 상현 씨 스스로 다리를 못 믿어서 그런 겁니다. 오른쪽 다리를 몇 개월간 제대로 안 쓰다 보니 오른쪽 다리를 믿지 못하고 체중을 못 싣게 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체중을 다 싣고 걸어도 되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걸으실 수 있습니까? 선생님의 확고한 답변을 들은 저는 그제야 저의 오른쪽 다리를 믿고 체중을 실었고,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전과 다름없이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때때로 세상에서 내가 가장 슬픈 것 같고, 세상의 모든 슬픔과 우울이 나에게만 찾아오는 것 같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슬픔과 우울, 아픔까지도 내가 끌어 모으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수록 좋지 않았던 상황은 결국 더 안 좋은 쪽으로 추락하곤 했습니다. 즉 우리의 믿음은 생각보다 효과가 좋아서 부정적인 생각은 언제나 부정적인 일을 불러오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이 곧 우리가 행동하는 것들이 되고, 생각과 행동이 합쳐져 우리가 처한 상황을 만들어 냅니다.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은 내 믿음이 만들어낸 결과인 셈입니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고 해서 언제나 긍정적인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긍정을 습관화하는 것이야말로 부정적인 일이 생겼을 때 우리를 그곳에서 좀 더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줄 것임은 분명합니다. 저는 매일 아침 독서를 하고, 명상을 하고 운동을 한 뒤에 출근합니다. 또 출근길에는 오디오북을 듣거나 음악을 들으며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하루하루 이것들을 다 한다고 생각해 보면 꽤나 귀찮은 일일 수도 있겠지만, 긍정의 주파수에 나를 맞추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결국 지금 하는 좋은 생각 존은 루틴이 언젠가 찾아올 불행 앞에서도 이겨낼 힘을 만들어 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장담컨대 좋은 생각에 주파수를 맞추면 반드시 좋은 일이 찾아올 것입니다.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대화를 하던 중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는 인간이 느끼는 쾌락의 수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연구 결과도 아니었고, 누가 만들었는지 정확한 출처도 알 수 없는 수치였지만 꽤 설득력이 있고 흥미진진했습니다. 인간의 다양한 행동과 감정에 따른 쾌락을 비교한 것인데 적당한 취기, 첫 키스와 같은 쾌락 수치가 1위라면 당 섭취는 3, 컴퓨터 게임은 극심한 갈증 후에, 수분 섭취나 운동 후에 맛있게 먹는 식사는 10으로 표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밖에도 감동을 받았을 때 합격했을 때는 20, 공포감이나 섹스의 경우는 55였고 가장 높은 수치는 도박과 마약으로 150이었습니다. 놀라웠던 것은 도박과 마약의 캐락 수치가 150으로 가장 높았다는 것인데 제가 여기에서 주목한 부분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마약과 뿌듯함, 성취감의 차이였습니다. 성취감과 뿌듯함을 얻게 되는 쾌락 수치보다 마약을 했을 때 우는 쾌락 수치가 훨씬 더 높은 것을 보며 축구선수 손흥민의 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에 나오는 글이 생각났습니다. 제 인생에서 공짜로 얻은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드리블, 슈팅, 컨디션 유지, 부상 방지 등은 전부 죽어라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이라고 믿습니다. 어제 값을 치른 대가를 오늘 받고 내일 받을 대가를 위해서 오늘 먼저 값을 치릅니다. 후불은 없습니다. 후불은 없다는 말이 정말 와닿았습니다. 결국 저는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결정해야 될 기본 값은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통은 삶의 기본이고 그 값이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는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중이거나 고통 뒤에 찾아오는 것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그 이상의 놀라운 모습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No pain No gain, 고통 없이 없는 것도 없다는 유명한 명언입니다. 우리는 어렸을 적 전래 동화부터 TV 프로그램 등을 통해 고통이 주는 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얻고 싶다면 그에 따르는 책임이나 고통을 견뎌야 한다는 것, 쉽게 얻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노력은 성취의 바탕이 됩니다. 즉 노력은 고통의 한 종류로서 그 고통을 견디고 견뎌야 45만큼의 쾌락을 느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약은 다릅니다. 마약은 후불입니다. 마약을 한 이들의 말을 빌리자면 마약은 몸에 들어가자마자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행복해지고 현실을 다른 세상으로 바꿔 놓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행복이 끝나면 중독, 범죄, 우울증, 무기력증, 환각, 환청, 후회 등 또 다른 고통에 대한 값을 받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술은 어떨까요? 저 역시도 술은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맛있는 것을 먹거나 친한 사람들을 마주할 때, 오랜만에 보는 친구를 만날 때면 술을 마시곤 합니다. 술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긴 하지만 그 덕분에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술을 마시는 데 필요한 노력은 하나도 돌아가지 않으니 그저 따르고 마시면 손쉽게 기분 좋은 감정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고통은 없고 행복만 존재하는 술을 마시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모든 행복엔 고통이 깔려 있다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술을 마시고 난 뒤에 우리는 행복을 받고 고통을 후불로 결제해야만 합니다. 우리 몸에서 술을 분해하는 동안 우울함을 느끼게 만드는 물질이 분비되기 때문입니다. 술이 깨는 동시에 어제보다 더 큰 우울감을 느끼게 되고 그러면 다시금 술이 들어갔을 때의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 불안함을 잊기 위해서, 외로움을 잊기 위해서, 고통을 잊기 위해서 우리는 또 술을 찾고 맙니다. 그렇게 해야 할 일, 마땅히 받아야 할 고통을 회피하게 되고 우리가 그리고 원하고 바라던 모습과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통과 행복을 별개로 놓고 보는 순간 인생을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거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데 나만 힘들다는 감정을 느끼고 맙니다. 하지만 나만 힘들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 어차피 삶은 힘들고 외롭고 고통스럽습니다. 아기가 걷기 위해서는 평균적으로 이천 번을 넘어져야 된다고 합니다. 2천 번의 힘들고 긴 순간을 반복해야 비로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셈입니다. 저는 예기치 않은 불안과 고통이 찾아오면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왔구나 반가워 내가 또 한 번 성장할 기회를 주는구나. 결국 불안과 고통이라는 건 누구나 당연히 느끼게 되는 감정입니다. 없애려 할수록 불안과 고통은 다른 형태로 나를 찾아와 자꾸만 말을 걸어올 테죠. 그러니까 불안하다고 불안해하지 말고 고통스럽다고 고통을 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원래 그런 것입니다. 감정은 불완전합니다. 사소한 변화에도 휩쓸리고 망가지기 쉽습니다. 우리가 흔히 후회하게 되는 모든 일들은 감정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런 감정을 다스리려면 감정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저는 일일이 반응하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을 맞이할 때 감정적으로 변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감정에 반응하는 것이 아닌 상황을 내 손에 넣고 관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쉽게 말해 곧장 반응하지 않고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반응이 아닌 생각, 그것을 우리는 이성이라고 부릅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저녁에 의자를 사지 마라 어느 것이든 편하게 느껴질 것이다 배고플 때 장 보지 마라 무엇이든 맛있게 느껴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입니다. 그렇게 감정을 생각하고 관찰하려는 노력이 수반된다면 즉흥적이고 위험한 감정적인 선택을 어느 정도 막을 수가 있습니다. 감정이라는 것은 본질을 파악하는 순간 힘을 잃기 마련입니다. 비슷한 이야기로 걱정을 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걱정이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걱정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걱정을 객관화시킨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할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괴로움이 찾아왔을 때 괴로움을 옆에 두고서 회피하거나 계속해서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온 괴로움 자체를 내 입장이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수행 방법이 있습니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괴로움과 나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생기면서, 괴로움 자체를 감정이 아닌 하나의 물건처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결국 해결해야 될 하나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거나, 찾아온 괴로움을 어떻게 다룰지 파악해 보는 시간을 갖는 여유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나만의 속도
행운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한 정확한 방법이나 지침 같은 건 없겠지만, 이제껏 제가 경험해 온 바와 행운이 따른다는 사람들의 경험을 토대로 살펴보면, 큰 범위에서 타인에 대한 축복과 배려, 그리고 마음가짐이라는 두 가지 방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다짐과 마음 가짐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까? 저는 매일 아침 모두의 행복을 빌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또 명상이 끝나면 그날그날 생각나는 두세 명의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오늘은 직장에서 일이 잘 풀려 웃음 짓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인간관계로 지쳐 있을 텐데,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고 감동받는 일이 꼭 생겼으면 좋겠다와 같이 그 사람의 오늘 하루가 어떤 식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떠올리며, 그들의 하루에 축복과 행복을 빌어주고 있습니다. 별것 아닐지 모르는 이 행동은 제게 큰 평온함과 행운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기심과 혐오로 점철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적어도 타인의 행복을 간절히 바라고 위하는 행동이 마음속의 여유를 만들어 주고,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려는 마음이 행동에도 드러나게 되어, 자연스럽게 나에게 얽힌 행운의 끈들을 좋은 방향으로 풀어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 나의 노력만으로는 닿지 못하는 범위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걸 느꼈습니다. 불교 경전 중에 주저제, 독약, 환착어, 본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인즉슨, 누군가 독약으로 해를 가할지라도 그 해는 해를 가하려는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덧붙여 부처는 누군가에게 욕과 비난을 들었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타인을 비난한다는 것은 결국 흙 한 줌을 불어오는 바람에 뿌리는 것과 같다. 뿌려진 흙은 결국 흙부린 자신의 얼굴에 날아올 것이고, 그 흙은 전부 본인이 쓰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축복과 행복을 빌어주는 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축복과 행복의 대상은 타인이었지만, 바람 앞에 흩뿌려진 흙처럼 결국 축복과 행복 역시 나에게로 돌아와 행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행운이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 내가 하는 일들이 결국 행운을 불러올 것이라는 마음가짐, 지금 닥쳐온 불행 역시도 행운으로 물들여 좋은 일이 다가올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들이 우리 집에 행운을 가져다준 것이었습니다. 고작 남의 시선 따위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 말이 진실을 기반한 사실일지라도 나는 어디에서건 존중받고 대접받아야 마땅합니다. 내가 겪은 모욕이 근거가 있든 없든 나에게 수치를 줄 수는 없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 주변에서 떠들어대고 있는 사람들은 내 인생을 겪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뿐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선택을 하든 그들의 준거 기준에 합당할 필요는 없으니 너무 개념치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이내 사라지는 것들 뿐이며, 나를 결코 무너뜨리거나 무기력하게 만들 힘이 없는 것들 뿐이니까요. 만일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할 때면 하나만 기억하세요. 나는 모욕을 겪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런 시선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설령 그 말이 진실된 것이라도 그들은 나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것 또 수많은 사람과 상황이 지금의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언젠가 그것조차 나를 지탱할 아주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내 인생에서 타인의 비중과 영향력을 높이지 않아야 합니다. 당시 봄이 올 무렵이어서 그런지 뉴스에는 꽃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았고, 그중에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인 벚꽃과 관련된 뉴스 기사가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하지만 뉴스 기사를 보고 꽤나 놀랐습니다. 봄을 대표하는 벚꽃이 봄이 한참 지난 9월에서 10월에도 가끔 만개를 한다는 이야기 때문이었죠. 명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학자들이 추측한 가장 유력한 이유는 벚꽃이 헷갈려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벚꽃은 도대체 왜 헷갈렸을까요? 기사를 조금 더 읽어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가을 벚꽃이 피어나는 현상은 주로 태풍이 연달아 일어났던 해에 발생한다고 합니다. 벚꽃은 보통 봄에 피거나 뜨거운 햇살과 태풍을 지나고, 매섭도록 차가운 바람과 얼어붙을 만큼 추운 계절을 보냈을 때쯤 따뜻한 햇살을 느끼면 그때가 돼서야 필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개화를 준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태풍이 잦은 해에는 여름 태풍의 매서움을 겨울바람으로 착각하고, 가을 햇살을 봄 햇살이 따스함이라고 판단해서 개화를 한다는 것이죠. 벚꽃은 주변에 벚꽃이 핀다고 해서 덩달아 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천만 번의 흔들림을 견디고 버텼으니 따스한 햇살이 비춘 것이라 스스로 판단해서 그렇게 피어난 것이죠. 저는 잡초와 벚꽃을 보며 다시금 나만의 속도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무서움, 불안함, 두려움 어떤 잡초든, 벚꽃이든, 사람이든 외부 환경에 의해서 흔들리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결국 흔들림 역시 끝이 나고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때는 분명히 올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불안감은 스스로 느낀 것이 아니라 주변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늦어서, 다른 사람만큼 못하는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은 잘하는 것 같은 때와 같이 모든 중심과 초점이 타인에게 가 있으니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잡초는 항상 그래왔습니다. 내가 여기 있다고 뽐내거나 티 내지 않고 어디서든 꿋꿋하게 자라났습니다. 아무리 뽑히고 밟히고, 흔들리고 맞아도 제 속도로 어느 누가 가을에 핀 벚꽃이라고 해서 벚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느 누가 가을에 핀 벚꽃이라고 해서 예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요? 벚꽃은 언제 피어도 벚꽃인 것처럼 내가 피어날 시기 역시 나에게만 맞추면 되는 거였고, 나는 흔들리고 아프고 불안해도 계속해서 나로 존재하면 되는 거였습니다. 나만의 속도는 그런 거였습니다. 나만의 속도로 걸어가라는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했던, 마음이 여유롭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아니라 자꾸만 옆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옆을 보니 내가 느린 것만 같고 뒤처지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벚꽃처럼, 또 잡초처럼 꿋꿋한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타인이 아닌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추고 중심을 잡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만의 속도는 분명 존재합니다. 평생 흔들리고 불안하고 아픈 상황들이 찾아올 테지만 저는 믿고 있습니다. 나만의 속도로 간다면 그런 것쯤 별것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힘들고 불행한 순간이 찾아오면 불행은 아무런 힘이 없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결국 불행에 먹이를 주고 힘을 준 건 나였을 테니 불행이라는 녀석을 더 키우지 않으려면 불안이나 걱정과 같이 불행이 좋아하는 먹이를 더 주지 않으면 되는 것이죠. 정신과 건강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실제로 뇌에서는 신체적인 고통을 처리하는 것과 정신적인 고통을 처리하는 곳이 같다고 합니다. 심지어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타이레놀을 주면 심리적 불안과 상실감이 복용하지 않은 사람보다 완화되었다고 합니다. 정신적인 부분을 다스리고 안정된 상태로 끌어올리려면 신체적인 활동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찾아올 때, 또 마음이 불안으로 가득 찼을 때 삶의 루틴을 바꾸었습니다. 평소에는 눈을 뜨자마자 씻고 출근을 해서 정신없이 일을 했지만 삶의 루틴을 바꾼 후에 아침에 무작정 나가 10km를 달리고, 기록이 남으면 웨이트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2주간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눈꺼풀이 너무나도 무거웠고 취침시간은 자연스럽게 빨라졌습니다. 운동을 하기 전엔 밤만 되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져 말똥말똥한 눈으로 새벽 3시에서 4시까지 잠에 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늦게 자다 보니 당연히 다음 날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운동은 이러한 첫 번째 악순환을 끊어내는 가장 좋은 처방이었습니다. 몸을 움직이는 건 규칙적인 삶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까지 가져다주었습니다. 무슨 운동 하나로 극적인 변화가 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어떻게든 목표를 달성한 저는 이미 가장 큰 일을 해냈네 다음 목표들은 더 쉬우니까 다 해낼 수 있겠다 이런 생각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더 큰 어려움으로 빠뜨리는 건 모두 불행이 불러온 불안 때문입니다. 그런데 몸을 움직이니 마음이 움직였고, 차오르는 마음이 불안을 위축시켰고, 위축된 불안은 힘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불안하거나 무기력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일단 움직여야 합니다. 실제로 우울한 마음이 드는 사람에게 가장 많이 추천해 주는 처방 중 하나는 햇빛을 많이 쬐고, 물을 많이 마시고, 산책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가장 원초적인 행동들이 우리의 우울한 감정을 사라지게 만드는 셈입니다. 힘든 순간과 불행은 예측하지 못하는 시점에서 찾아옵니다. 우리는 감정에 지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좋지 않을 땐 몸에 힘이 빠지기도 하고 사소한 것에 예민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불행이 찾아온 힘든 순간에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은 삶의 안정적인 패턴을 만드는 것입니다. 비슷한 시간에 잠을 자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햇볕을 많이 쬐고, 땀을 흘리고, 집중할 대상을 찾는 것 이것만으로도 힘든 순간을 이겨낼 큰 발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세상은 어쩔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벌어진 일들, 지나간 일들은 후회에도 돌이키거나 물을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 마음을 다잡는 방법은 무엇인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당신을 불행에서 극복해 줄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확신은 타인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타인으로부터 나오는 건 불안뿐입니다. 내가 걷는 길은 나만 알고 있고 나만 알 수 있습니다. 되고 싶다면 하면 되고, 하기 싫다면 바라지 않으면 됩니다. 사람들은 내가 잘 되고 내가 잘 안 되어도 그 이유를 나에게서 찾을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이든 개의치 말고 나만의 생각과 방법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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