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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

마흔에 읽는 니체,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한 철학 수업

by J____H 2023.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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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한 철학 수업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사랑하라



마흔의 삶에 자극제가 되는 니체의 25가지 조언 나는 어떻게 이 삶을 사랑할 것인가? 마흔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음을 느낀다. 가족, 사랑, 직업, 인간관계 모두 우리 각자의 삶을 단단히 받쳐주는 것들이지만 뜻대로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 무거운 짐으로 느껴진다. 지금까지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 채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 쉴 새 없이 달려온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정작 인생을 제대로 즐길 여유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절은 즐기지도 못한 채 지나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어릴 적 꿈꾸었던 상과는 너무나 다른 곳으로 와버렸다. 내가 정말 이루고 싶었던 꿈들은 이제 영영 멀어져 버린 것 같다. 지금 이 모습, 이대로 남은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에 깨닫게 된 것들이 결국 이것밖에 안 된단 말인가? 나에게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가? 나는 내 삶을 제대로 누려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가? 나는 과연 내 인생의 주인인가 아니면 노예인가? 이러한 질문들이 마음에 와닿는다면 이제는 새로운 질문을 던질 때가 되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이 단 하나 있다면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하루를 더 살든 50년을 더 살든 중요한 것은 인생의 정답이 아닌 질문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프리드레인 이체는 의심의 철학자라고 불린다. 그는 사람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믿어왔던 진리와 가치, 삶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그리고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어보았다.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부터 알아야 한다. 또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는지를 알아야 한다. 니체는 인생의 마지막 질문을 찾았다. 나는 어떻게 이 삶을 사랑할 것인가?

 

마흔 왜 니체 철학인가?



많은 사람이 별다른 일 없이 사는 것 같아도 사업 실패, 실직, 결혼 생활에서의 권태, 이혼, 가족과 친구의 죽음,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으로 고통받는다. 또한 그야말로 순식간에 바뀌어 가는 사회 변화와 갈수록 심해지는 물질 만능주의에 무한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달려왔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좋다고 평가하는 것을 좇느라 결국 진정한 자기는 실종된 삶을 살아왔다. 그랬더니 이제는 매일같이 우울, 두려움, 분노, 증오, 질투, 원한 같은 기분 나쁜 감정들에 휩싸인 병든 인간이 되었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줄 타는 광대처럼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하루하루를 악전고투하며 산다. 앞으로도 이렇게 지루한 삶이 계속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맥이 빠진다. 이렇듯 삶의 한가운데 나만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 든다면 이제 삶의 의미를 찾은 철학자 니체를 만날 시간이다. 과연 니체 철학의 어디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첫 번째 니체의 작품은 인생에 힘이 되는 주옥같은 아포리즘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통으로 가득한 현실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는 뚝심 좋은 니체의 자원들은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두 번째 니체 철학은 삶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들어있다. 마음에 니체의 작품을 읽는다면 어떻게 공허한 마음을 다잡고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는지 그 해답을 찾을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숱한 고민 속에서 우리는 해답이 있다고 믿고 그 해답을 찾아 헤매느라 고통스러워한다. 만약 몇 개의 해답을 찾았다고 해도 인생 살리는 여전히 녹록지 않다. 여기에 니체가 이런 답을 내놓았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니체 철학은 허무주의, 즉 무의미한 삶에서 벗어나는 데에서 시작했다. 니체는 생각 자체를 바꾸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무언가에 의지하며 살았던 태도에서 벗어나 오직 자기 자신만을 의지하라고 말한다. 내가 진정으로 나답게 사는 것이 니체가 제시한 초인으로서의 삶이다. 세 번째 니체는 단 한 번뿐인 이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전에도 많은 사람이 삶은 고통 그 자체라고들 말했지만 지금은 유난히 더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마흔이면 삶이 익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낯설 때가 많다. 이런저런 문제가 우리의 삶을 옭아매고 있어서 견뎌내기가 더욱 힘들다. 하지만 니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삶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이것이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의 운명의 이다. 니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좋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비록 사실은 그러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라는 뜻이다. 니체는 우리의 인생이 고달픈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상관없이 이 삶을 사랑하라고 했다. 곧 행복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달려있다. 행복이나 불행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현재 가진 것에 얼마나 만족하며 감사하는가에 달려있다.

 

당신은 단 한 번뿐인 이 삶을 사랑하는가?



이 물음에 당신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면 삶에 대한 열정이 식어서 그런 것이다. 열정은 삶을 이끌어가는 강렬한 의지의 표현이다. 우리는 인생의 중반 이후의 삶으로 향하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 40대는 삶을 극복하느냐 아니면 그냥 주저앉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다. 이 중요한 시기의 우리에게는 현재 젊은 시절에 꿈꾸었던 삶은 온데간데없이 공허함만 남아 있다. 인생의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머뭇거리며 건태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이때 주어진 현실에 안주한다면 정신의 성장은 멈춰버리고 말 것이다. 누구나 영원한 삶을 꿈꾼다. 그런데 과거에 놓쳐버린 것들을 떠올리며 후회 속에 살아가기 바쁘다. 그러다 결국 남은 삶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니체는 유고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삶의 순간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마흔 니체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보다 더 힘든 삶을 미리 살아본 니체가 당신이 절망, 좌절, 외로움, 방황, 실패와 마주할 때 이를 극복할 해결책을 말해줄 수 있다. 그는 이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철학적 사유로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허무감과 무기력이 급습해 오는 나에 니체는 자신이 제시하는 철학적 무기로 방어해 보라고 한다. 니체 철학은 우리 삶과 매우 가깝다. 나는 니체 철학에서 우리 삶에 특별히 중요한 25가지의 키워드를 선정한 후 방대한 니체 전집을 해체하고 필요한 부분을 정리하여 각각의 키워드와 연결하는 작업을 해왔다. 따라서 이 책 한 권만 읽는다면 니체 철학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건강한 삶을 위한 자극이 될 것이다.

 

왜 자기 자신을 찾아야 하는가?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 나는 그대들에게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어떻게 하여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는 사자가 되며, 사자는 마침내 아이가 되는가를.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신은 죽었다는 선언은 니체 철학의 출발점이다. 니체는 신의 죽음으로 도래한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철학 원리를 제시했다. 먼저 인간에게 초인이라는 목표를 제시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극복하여 초인이 되기 위해서 힘의 의지를 가져야 한다. 또한 이체는 기존의 형이상학적 토대를 접목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도록 모든 가치의 전도라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초인은 현재의 삶이 수없이 되풀이되어도 긍정하는 영원 회귀 사상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삶이 고통스럽더라도 절망하지 말고 아모르파티, 즉 자신의 운명을 사랑해야 한다. 영혼 회귀 사상과 아모르파티는 현재의 삶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다. 따라서 이 두 사상은 뒤에 나올 디오니소스적 긍정이라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최고의 긍정 양식으로 귀결된다. 니체는 우리의 삶이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삶이기를 바란다. 니체 철학의 핵심적인 주제가 바로 자기 극복이다. 자기 극복은 자기 변화 또는 정신의 변화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니체는 자기 자신을 극복하려는 정신의 진보와 발전에도 일정한 단계가 있다고 본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서 니체는 자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정신의 세 단계 변화를 각각 낙타, 사자, 아이로 비유하여 말한다. 이러한 정신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최상의 모습인 초인에 이르게 된다. 정신이 발전하는 세 번의 변화 니체는 어떻게 하여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고, 사자가 마침내 아이로 발전하는지 그 과정을 설명한다. 나는 해야 한다 낙타 정신 첫 번째는 정신이 낙타로 변하는 낙타 정신의 단계이다. 낙타의 정신은 무거운 짐을 지고 버텨내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곧 강인한 정신과 인내심을 의미한다. 낙타는 체념 어린 말투로 나는 해야 한다라며 주인의 명령에 복종할 뿐이다. 무겁기 그지없는 짐을 짊어지고 사막을 건너는 낙타처럼 우리도 삶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여기에서 무거운 짐은 전통적인 철학과 종교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진리, 도덕, 신념, 관습과 교율, 신에 대한 순종과 믿음 등을 의미한다. 자유로운 정신을 추구한 니체의 입장에서 보면 정신이 낙타로 변했다는 것은 현대인의 노예적인 모습에 대한 비유이다. 낙타 정신은 일상적 삶에 매몰돼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며 그 상태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삶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좁은 세계에 갇혀 우울한 개구리 같은 삶을 살아가는 낙타 정신은 인간 말종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낙타 정신의 문제점은 인식의 테두리가 좁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데 있다. 그래서 낙타는 아무리 짐이 무겁더라도 무엇이 무겁단 말인가?라고 반문하면서 무릎을 꿇고 등에 가득 실리는 짐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로지 지금까지 믿어왔던 것들이 최고의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낙타는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며 변화를 거부한다. 낙타 정신은 오늘도 무거운 짐을 지고 일상이라는 사막을 향해 서둘러 갈 뿐이다. 나는 하길 원한다 사자 정신 두 번째는 사자 정신의 단계이다. 자라투스트라는 외롭기 짝이 없는 저 사막에서 두 번째 변화가 일어난다라고 말한다. 고독한 사막에서 낙타 정신이 드디어 사자 정신으로 변신한다. 사자는 자유정신을 의미한다. 사자의 정신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하여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자신이 짊어지고 있었던 무거운 짐을 부정하고 파괴한다. 사자는 이제 그의 마지막 주인인 거대한 용과 일전을 벌인다. 사자는 용과 싸워 승리함으로써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라는 명령에 맞서 나는 하길 원한다라는 자유의지의 주인이 된다. 사자 정신은 주관이 뚜렷해서 세상의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다. 그러나 사자의 정신은 새로운 가치 창조를 위한 자유는 쟁취할 수 있지만 기존의 가치를 파괴할 뿐 새로운 가치는 창조하지 못한다. 최고의 몰입, 아이 정신 세 번째는 아이 정신의 단계이다. 이제 사자 정신은 아이의 정신으로 변해야만 한다. 여기에서 아이의 정신이란 어린아이가 놀이에 흠뻑 빠져 몰두하듯 자기의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 변화의 단계인 아이 정신은 자기 극복을 위한 최고의 경지에 이른 모습이다. 니체는 이런 아이 정신의 특징을 순진무구함, 망각,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도는 술의 바퀴, 최초의 움직임, 성스러운 긍정 이렇게 7가지로 표현했다. 모든 문제의 해답은 내 안에 있다. 강탈하는 사자가 이제는 왜 아이가 되어야만 하는가? 니체는 반문한다. 그리고 자답한다. 창조라는 유의를 위해서는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 정신은 아이가 되어야만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니체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놀이에 집중하는 순진한 아이의 모습에서 진정한 창조자의 모습을 발견했다.

 

아이는 무엇인가?



마음에 안 든다고 울며 떼쓰다가도 곧 잊어버리고 다시 즐겁게 놀이에 뛰어든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웃음은 티 없이 맑고 순진무구하다. 과연 중년에도 아이처럼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까? 중년에 이르러 어떤 것을 새롭게 창조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대로 이런저런 길을 모색했지만 결국 인생의 막다른 길에 도달하곤 한다. 이럴 땐 니체는 아이처럼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잊어버리라고 말한다. 창조력은 익숙한 과거를 잊고 낯선 곳으로 자기 자신을 던질 때 비로소 발견된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제시한 인간만이 가진 망각할 수 있는 힘이다. 매번 새로운 마음으로 놀이를 시작하는 아이 같이 처음으로 돌아갈 때 우리에게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추운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이 오면 산과 강, 나무와 뿌리, 나뭇잎과 꽃, 자연의 모든 만물에 생명의 기운이 약동한다. 새로운 봄이 창조적이듯 우리의 정신도 이 세 개의 창조 활동에 얼마나 지속적으로 관여하고 있는가 우리 안에서 그리고 자연 안에서 활동하는 창조력은 신을 닮았다. 외부의 세계가 몰락한다 해도 우리의 정신은 그 세계를 다시 세울 능력이 있다. 아이의 정신은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은 영혼의 속삭임이 하루 종일 끊임없이 우리 안에서 들려온다. 마음의 기로 듣는 연습을 해야 한다. 모든 창조의 영상은 이미 우리 마음속에 만들어져서 깊은 내면으로부터 울려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끊임없이 고난과 고통으로 가득할지라도 삶을 아름답게 창조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 낙타, 사자, 아이로 세 번의 변화를 거쳐 우리는 초인에 이를 수 있다.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초인이 되는 방법을 외부 세계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삶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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