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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저의 축구는 온전히 아버지의 작품입니다-손흥민

by J____H 2023.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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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보다 사람이 먼저다



뜬금없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매 순간 전쟁을 치르듯 한다.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지뢰밭 길인지 되새기며 항상 조심스러운 마음을 갖고 산다. 감사한 마음, 그래서 조심스러운 마음 운칠기삼. 모든 것은 운이 좋아 이루어진 일이기에 삶 앞에서 겸손한 마음, 초심을 지키는 마음 이 마음들이 나에겐 가장 중요하다. 2019 20 시즌은 정말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았다. 흥민이가 입은 부상도 버거운 일이지만 경기 중 상대 선수가 부상을 입는 일 역시 너무 가혹한 일이다. 격렬하게 몸과 몸이 부딪히는 운동이 축구이다 보니 뜻하지 않게 부상을 당하기도 하고 부상을 입히기도 한다. 나는 축구를 하면서 축구보다 사람이 먼저다라고 수없이 강조해 왔고, 누구보다 이 철학을 철저하게 지키려 애쓰는 선수가 손흥민이라는 걸 알고 있다. 아무리 기술과 실력이 좋아도 자신의 감정을 잡지 못하면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없다. 영국 날짜로 2019년 11월 3일 프리미어리그 11라운드 에버턴전 원정 경기에서 흥민이는 시즌 첫 퇴장을 당했다. 하지만 퇴장이 문제가 아니었다. 후반 33분경 흥민이의 태클 이후 연결된 상황 속에서 에버턴 수비수 안드레 고메스가 오른쪽 발목 골절상을 당했다. 선수들도 넘어진 고메스의 상태를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 흥민이 역시 엄청난 공황에 빠졌다. 흥민이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울었다. 옐로카드를 꺼냈던 주심 마틴 에킨스는 디렉트 레드카드로 판정을 번복하면서 흥민이를 퇴장시켰다. 흥민이는 반쯤 넋이 나가 스태프의 부축을 받으며 경기장을 벗어났다. 공을 빼앗기 위한 격렬한 몸싸움 와중에 한 사람이 쓰러지면 반칙을 저지른 사람에게는 구두로 주의가 내려지거나, 한 번 더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퇴장시키겠다는 경고의 옐로카드가 제시된다. 주심의 이런 판단에 따라 경기 흐름이 순식간에 바뀌는 게 축구다. 그래서 정해진 규칙 안에서 역량을 극대화할 줄 아는 것도 선수의 능력이다. 물론 선수들 사이에서는 주심의 눈을 피해 끊임없이 밀고 당기고 치고받는 보이지 않는 반칙이 난무한다. 필드 위에 서면 야수처럼 변하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약삭빠른 꾀돌이로 변하는 선수도 있다. 축구장은 단순한 몸싸움의 장이 아니라 고도의 심리전이 전개되는 두뇌 싸움의 장이다. 먼저 내가 날 다스리지 않으면 상대를 이길 수 없다. 이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래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말이고, 흥민이 역시 마음속에 새기고 있는 말은 이것이다. 상대가 넘어지는 것을 보면 그 상황이 아무리 공을 툭 차면 골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좋은 찬스라 해도 공을 바깥으로 차내라 사람부터 챙겨라 너는 축구선수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사람이 먼저다. 축구는 야생의 스포츠이고 인간의 원시성을 그대로 보존한 운동이다. 구기 종목 중 가장 야생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축구에 꼭 필요한 기본 장비는 둥근 공이 전부다. 간소하다. 공만 있으면 어디서든 맨발로도 축구를 할 수 있다. 달랑 공 하나만 놓고 뛰고 달리고 협력해 상대방 골문 안에 공을 많이 차 넣으면 이긴다. 축구는 이처럼 단순하지만 한편으론 매우 거칠고 격렬하다. 경기에서 손은 철저히 배제된다. 오로지 발만 쓸 수 있다. 발의 감각을 최대한 살려 상대방 골문에 공을 많이 차 넣어야 이기는 운동 경기, 다시 말해 부자연스러운 발을 가능한 자연스럽게 사용해 목적을 이루는 운동 경기가 축구인 것이다. 이런 성격을 갖고 있다 보니 자연의 충돌이 작고 과격해지기 쉽다. 사납게 쟁투를 하듯 달려들지 않으면 상대에게 제압당하고 만다. 제압하지 않으면 제압당한다. 축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생의 이치 중 하나다. 어찌 보면 잔혹한 이치다. 하지만 그 하나만 알면 축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리스펙. 나에게 스포츠맨십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바로 리스펙트다. 상대 선수에 대한 존중, 같이 뛰는 선수들에 대한 존경,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그것을 초월하는 존중과 존경이 함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축구의 진짜 묘미이고 축구가 아름다운 스포츠인 이유이다. 운동장 안에서 선수들 서로가 보호해 주어야 한다.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신속하게 판단하되 마음을 다스리고 경쟁 속에서도 본질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저 공만 잘 찬다고 좋은 축구 선수는 아니다. 축구 경기에 있어 태클은 없어서는 안 되는 기술 중 하나이다. 태클과 방어 그 흐름 속에서 타이밍이 나쁘고 불운한 날은 부상으로 이어진다. 너무도 안타깝게도 그날 고메스의 경우가 그러했다. 뜻밖의 사고였다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경기 종료 후 인터뷰에서 마르코 실바 에버턴 감독은 흥민이가 고의로 반칙을 했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토트넘의 델리 알리는 경기가 끝난 후에도 흥민이가 라커룸에서 혼자 계속 울고 있었다고 전했다. 승패가 무의미한 경계였다. 에버턴의 주장 시먼스 콜먼과 젠크 토슨도 토트나 라커룸을 찾아와 충격에 빠져 있는 흥민이를 다독이고 돌아갔다. 특히 콜머는 국가대표 대항전에서 당한 정강이 골절 부상에서 재활한 지 얼마 안 된 선수였다. 그런 그가 그건 사고였지 내 잘못이 아니다 라며 건넨 위로의 말은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영국의 축구 전문가들은 미디어를 통해 흥민이의 디렉트 퇴장 결정이 잘못됐다고 평했다. 심판의 판정 번복이 잘못된 것이라는 여론 역시 비등했다. 그런데도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경기 직후 흥민이에게 세 경기 출장 정지를 내려 12월 1일 본머스와의 14 라운드까지 결장이 확장되었다. 그러나 토트넘 구단은 이 결정에 불복해 즉각 항소했다. 결국 고메스의 부상은 착지하면서 생긴 불운의 사고였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흥민이가 받은 레드카드는 취소됐다. 이에 따라 협회의 징계 역시 철회됐으며, 흥민이는 다음 라운드에 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감사하고 힘이 된 것은 고메스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소식이었다. 2019년 11월 7일, 흥민이는 경기에 선발로 나서서 두 골을 넣었다. 골을 넣은 후에도 세리머니를 하지 않았다. 카메라를 향해 두 손을 모아 고메스에게 미안함을 표현했을 뿐이다. 많은 이가 고메스의 부상을 걱정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충격을 받았을 흥민이를 걱정해 주었다. 말로는 다 하지 못할 만큼 감사했다. 선수였던, 또 선수의 부모인 나는 고메스와 그의 가족이 걱정되었다. 구단 스태프를 통해 고메스와 고메스 부모님께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하루빨리 케어되어 필드에서 볼 수 있기를 희망하는 마음을 담아 전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뿐이었으나 간절함은 진심이었다. 고메스 역시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치고 재활에 들어가 복귀를 점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가장 크게 마음 썼던 것은 고메스의 선수 생명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고메스는 재활 훈련을 잘 마치고 2020년 2월 24일 시즌이 끝나기 전에 복귀할 수 있었다. 백십이일 만이었다. 언뜻 보면 예상보다 빠른 기적적인 복귀가 아닌가 싶을 수 있다. 그러나 고메스가 겪었을 그 지옥 같은 여정을 상상만 해도 나는 숨이 막힌다. 그가 얼마나 강한 선수인지 새삼 되새기게 된다. 고메스는 처음에는 다시 뛸 수 없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상은 받아들여야 하고 맞서 싸워야 한다. 알아도 하기 어렵다. 안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말 지루하고 고된 어려운 싸움이다. 어서 회복해야만 한다고 되뇌면서도 순간순간 밀려오는 엄청난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을 것이다. 이 부상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닌 그를 둘러싼 사랑하는 사람들과 연관된 문제임을 깨닫고 포기하지 않아야만 해낼 수 있다. 고메스는 그것을 해냈다. 얼마나 성숙한가 나는 고메스가 피치 위에 다시 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진짜 강자라고 생각했다. 모든 경쟁은 결국 자기 자신을 넘느냐 넘지 못하느냐에 달렸다. 나 자신을 극복하는 일은 다른 사람을 제압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값지고 훌륭하다. 내가 운동장 위에서 뛰고 부딪히고 눈을 마주치며 공을 차는 많은 선수들을 존경하고 존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들은 매 순간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다.

 

나는 나의 축구 이야기가 싫다.



스물여덟 나는 은퇴를 결정했다. 축구 선수로는 이른 나이였다. 아킬레스건 부상이 내 축구 인생의 발목을 잡았다. 돌아보면 운이 따라 몇 번의 좋은 기회를 잡았지만 나는 내 축구 이야기가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공도 제대로 다룰 줄 모르면서 축구가 뭔지도 모르면서 축구 선수로 뛰었던 지난 시간이 참으로 한심스럽다. 남들보다 조금 빨랐고 악바리같이 몰아붙였고 운동이 너무 좋아 반쯤 미쳐 있었을 뿐 축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천둥벌거숭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내 축구 이야기에는 불만이 많다. 1990년 프로팀이라 천마에서 은퇴하면서 내 삶은 바뀌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어깨가 무거웠다. 나에겐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었다. 유소년 시기 축구를 했던 제2의 고향 춘천으로 돌아왔지만 형편은 좋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축구 선수도 프로 선수도 아니었다.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다. 절망과 방황은 내 성격에 맞지 않았다. 다 쓸데없는 일이다. 그래 살궁리를 하자. 정말 고생 많이 하신 어르신들이 들으면 헛웃음 칠 수도 있겠지만 축구를 하는 동안에도 또 그만둔 뒤에도 내 삶은 척박했다. 짧은 프로 선수 시절 모아둔 연봉은 은퇴 후 생계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은 점점 깊어졌다. 쓸 줄 아는 건 몸뚱이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춘천 국민생활관이라는 생활체육시설에서 일용직 헬스 트레이너로 일을 시작했다. 한 달간 일하고 나니까 급여로 27만 원을 주었다. 이걸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일이 없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공사판에 나갔다. 하루도 쉬지 않았다. 날품팔이었지만 일은 그런대로 할 만했다. 생활체육시설에 출근하면 새벽부터 청소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맨발로 들어와 운동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티끌 하나 없이 청소를 했고, 미화원 아주머니들 청소 구역인 남자 화장실까지 락스와 장갑 수세미를 챙겨 들고 구석구석 닦아냈다. 지금도 나는 어느 숙소에 묶거나 호텔에 가도 내가 머무는 곳 청소는 하루에 한 번씩 내 손으로 직접 한다. 까탈스러울 정도로 깔끔을 떠는 건 청소뿐만이 아니다. 내 삶이나 생활이나 관계 모든 것이 지저분하고 복잡한 걸 싫어한다. 삶은 담백할수록 좋다. 지고 메고 공사판을 오르면서 처음에는 누가 알아볼까 봐 내심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프로 선수로 뛰던 손웅정이 막노동판에서 일한다고 수군대는 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남들이 하는 소리에 잠깐이나마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졌다. 날 때부터 프로 선수였던 것도 아닌데 프로로 좀 뛰었다고 그런 마음을 품다니 우스웠다. 일이 창피한 게 아니라 그걸 창피했다는 것이 창피한 거였다. 살아가는 길이 하나뿐인 것도 아닌데 왜 당당하고 떳떳하지 못했나 내가 삶에 교만하고 오만하다는 증거였다. 왕년에 뭘 했든 처자식 입을 거리 먹을거리 챙기지 못하는 놈팡이가 될 바에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중요했다. 낮은 자세로 삶을 대해야 했다. 그러자 마음이 누그러졌다. 이 공사판 막노동은 삶을 성찰하고 현재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개똥 밭에서 구를 수도 있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 수도 있다. 그게 가장이었다. 자식을 낳았다고 다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고 나이가 들었다고 다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삶은 의외로 단순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답은 쉽게 나온다. 그렇게 일용직으로 막노동판에서 일하며 살아도 남에게 꿀릴 게 하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자존감은 꽤 높았나 보다. 말 많고 관심 많은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 외쳤다. 나는 내 삶을 살아야 해. 당신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뭐라고 떠들든 난 상관없어. 나에게는 아이들이 있어. 프로 선수 그건 다 옛날 얘기야. 지금 내 상황은 이거고 막노동 판에서라도 벌어서 살아야 하는 게 지금의 나야. 가장이라면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첫째 의무다. 비록 내 뼈가 부서지더라도 당장의 내 삶과 내 생활은 없더라도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을 먼저 돌봐야 한다. 방과 후 체육 교실 강사도 하고 학교 시설 관리 일도 맡아했다. 투잡 쓰리잡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기면 짬짬이 생활비를 벌어 네 식구가 살림을 꾸려갔다. 물론 형편은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단칸방을 전전했고 컨테이너에서 살기도 했다. 궁핍했지만 아이들만큼은 가난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하도록 하고 싶었고 돈을 많이 버는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시간만큼은 원 없이 함께 보내는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어떠한 계산도 편견도 없이 바라보는 두 아이의 눈이 무서워 언제 어디서든 떳떳한 아버지가 되고자 했다. 우리 아이들은 알 것이다. 공차는 것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것 운동장에서 뛰는 것 사색하는 것 책 읽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은 오직 이 다섯 가지뿐이라는 것을.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이리저리 함부로 걷지 마라. 내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들의 이정표가 될지 모르니.



서산대사의 서약 글귀를 가슴팍에 새기며 살고 있다. 짧지만 너무 큰 말이라 매일 곱씹어야 나쁜 머리로 겨우 잊지 않고 살 수 있다. 교육자에게 이보다 올바른 지침이 되는 말이 어디 있겠는가. 부모든 선생이든 코치든 감독이든 아이들을 교육하는 사람들은 이 문구를 가슴에 새겨 넣어야 한다. 여기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이 말 하나 지키며 사는 것도 버거워 오늘도 허덕이는 게 아버지로서의 나다. 그게 현실이다. 우리 한국 축구의 고질병이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에만 집착하는 데서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그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경로를 바꿔야 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적합한 프로그램이 무엇일지 날마다 새롭게 고민했다. 눈만 뜨면 축구 생각을 했다. 길을 가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한 번은 자다가 꿈속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선뜻 잠에서 깼다. 아 정말 괜찮은 아이디어다. 내 프로그램에 적용해 봐야지 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났던 이만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참 당황했다. 그때부터 머리맡에 메모장을 두고 잠을 잤다. 아무리 사소한 발상이라도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그 자리에서 빠르게 기록해 두었다. 그중 어떤 것은 꽤 쓸만했다. 매일 이렇게 훈련 프로그램을 계속 고치고 다듬어 나갔다. 이 모든 것은 기본기 습득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나는 체험을 통해 20대 초반에 왕성한 에너지가 고갈되면, 20대 후반부터 선수의 기량은 전적으로 어릴 때 쌓은 기본기에 달려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경험하고 뼈저리게 느낀 것이었다. 쉽게 넣을 수 있는 골을 넣지 못하거나 골대 앞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는 것은 기본기 부족의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체계적인 훈련으로 어릴 때 익힌 동작이 반사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이미 늦었다고 봐야 한다. 찰나의 간결한 볼 터치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변수에 대응하려면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 차곡차곡 밑바닥부터 쌓지 않으면 기량은 어느 순간 싹 사라진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으려면 바닥부터 사다리를 딛고 가야 한다. 우리는 사다리 꼭대기에 올라간 사람에게만 눈길을 주지, 바닥부터 한 단계씩 차분히 발을 딛고 오르는 사람은 눈여겨보지 않는다. 사다리를 타고 높이 오르고 싶다면 한 칸 한 칸 차례로 조심스럽게 받고 가야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 자연스러운 동작은 공에 대한 감각에서 나온다. 축구의 비밀이 어디에 있을까? 축구공에 있다. 공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 외엔 길이 없다. 볼 감각이야말로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되는 지름길이다.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선수의 수명이 좌우된다.



나는 선수가 스물다섯 살 정도 됐을 때 최고의 기량을 낼 수 있도록 각 시기에 맞춰 단계별로 꼼꼼하게 훈련 프로그램을 짰다. 훈련하는 동안 이 생각은 더욱 강화됐고, 나는 이를 유소년 아이들에게 그대로 적용했다. 철저한 기본기를 중심으로 나이대에 맞는 독창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축구를 잘하게 되진 않는다. 고된 훈련을 통해서만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아서도 안 되고 첫술에 배부를 생각을 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우리가 걷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갓난아이 때에는 네 발로 기어 다녔다. 그다음에 두 발로 섞고 일어서는 일도 단번에 되지 않았다. 쓰러지고 또 쓰러지고 그러다 가까스로 첫걸음마를 뗐다. 수학을 공부하는데 미적분을 하려면 곱셈 나눗셈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아이가 태어나 걷기 위해서는 수백 수천 번은 넘어지고 엎어져야 한다. 축구라고 다르겠는가. 세상 이치가 그러한데 사람들은 너무 성급하게 결과만을 바라본다. 승리와 영광만을 소망한다. 제대로 싸워서 이기려면 수도 없이 패배하고 좌절해봐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좌절은 앞날이 보장된 좌절이자 실패가 아닌 경험이다. 이 과정을 겪어야 사람은 성장한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무슨 대단한 철학으로 시작한 건 결코 아니다. 내 아이가 축구를 하겠다니까 내 아이가 축구가 너무 좋다니까 그럼 나와 다른 길을 가보자 이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내가 삼류 선수였으니 내 전처를 밟지 않으려면 다른 길로 가야 했을 뿐이다. 기존의 축구 시스템이 운동장이라면 나는 운동장의 모래 하날만큼이라도 다르게 축구에 접근하고 싶었다. 절대 내가 잘났다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맞다는 것도 아니다. 내 오류를 두 번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 다른 방식으로 내 아이를 가르쳐보고 싶다는 욕심이었을 뿐이다. 그 생각으로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지금도 매일 생각한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능력은 없지만 좋은 지도자,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했고 연구했다. 오직 축구만 생각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기본기에 답이 있다. 몸의 밸런스가 중요하다 축구의 비밀은 공에 있다 이 세 가지 정도다. 축구의 왕도란 없다. 흥민이가 함부르크에서 처음 개학했을 때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1군 팀 훈련에 참가했을 때 분데스리가 데뷔골을 넣었을 때 사람들은 혜성처럼 나타난 선수라고들 표현했다. 나는 흥민이뿐 아니라 그 누구도, 그 어떤 분야에서도 혜성은 없다고 말하고 싶다. 이 세상에 혜성같이 나타난 선수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기본기가 그때 비로소 발현된 것일 뿐이다.

 

가정은 최초의 최고의 학교



책을 안 본다면 내가 과연 세상을 지혜롭게 살 수 있을까? 이 불안감과 절박함이 나를 책으로 이끌었다. 흥민이가 선수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이후에 여러 어려운 상황이 찾아왔다. 흥민이가 힘들면 나도 힘들고 흥민이가 괴로우면 나도 괴롭다. 모든 부모의 마음은 똑같다.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은 혼자 방으로 들어가 책을 읽는 것이다. 책 속에서 길을 찾고 위안을 얻는다. 나는 부족한 아비일지언정 최소한 아이들에게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책 읽는 모습, 솔선수범하는 모습은 보여왔다고 자부한다. 흥민이가 처음 독일에 갔을 때 내가 프로 선수가 못 되면 어떻게 하지? 엄마 아빠가 이렇게 고생했는데라고 걱정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함부르크에 도착했을 당시 훈련 외에 주 3일만 학교에 가도 된다고 설명을 들었을 때 흥민이는 본인이 먼저 매일 학교에 가겠다고 자청했다. 악착같이 현지에 적응하고 독일어를 익혀서 축구에 활용하고 축구에 집중하고 싶어 했다. 어린 시절 부모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책임감을 기본으로 착장하고 성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흥민이도 그랬다고 한다. 절대 대충 할 수 없었다고 절대 게을리할 수 없었다고. 가정은 최초의 학교고 최고의 학교다.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말에 앞서서 부모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먼저 보고 배운다. 아무리 좋고 옳은 말로 가르치고 훈육한다 해도 부모가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대들보가 휘면 기둥이 휜다. 부모가 올바른데 자식이 휘겠는가. 축구를 가르치면서 나는 아이들보다 몸을 적게 쓴 적이 없다. 아이들이 뛰는 만큼 뛰었고 아이들이 흘리는 땀만큼 흘렸다. 아니 그보다 더 뛰었고 더 많은 땀을 흘렸다. 내가 입으로만 시키고 말로만 지도한다면 아이들도 지칠 텐데 그것을 참고 견딜 수 있겠는가. 같이 뛰고 같이 힘들면 서로 의지할 수 있고 함께 즐길 수 있다. 흥민이를 가르칠 때도 지금 아카데미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아이들이 어느 순간 안주하고 발전할 생각이 보이지 않으면 나는 아이들의 운동을 멈추게 한다. 운동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먼저 바로 서지 않으면 안 된다. 운동장에서도 인문학은 필요하다. 이 세상이라는 전쟁터에서 쫓기는 사냥의 무리가 될 것인가 쫓는 사냥꾼이 될 것인가 나는 아이들에게 묻는다. 이왕이면 쫓는 사냥꾼으로 살라고 말해준다. 누군가를 공격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의 주도권을 쥐고 살라는 누군가에게 좌지우지되며 조종당하지 않는 삶을 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렇게 안주하고 있으면 언제나 쫓아오는 상대에게 쫓기는 삶을 살고 만다.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휘둘리는 삶을 살고 만다. 아이들은 높은 하늘에 떠 있는 새처럼 세상을 조감할 수 없다. 막막하고 불투명하고 불확실성에 놓여있다. 그건 어른들도 마찬가지지만 책과 선인의 말씀을 늘 곁에 둔다면 그 안에서 조금의 답은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부모가 그 역할을 해주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최고의 교육과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 한다. 이런 조건들을 갖추어주고 어떤 과정을 겪으면 행복하고 안정된 생활, 궁핍하지 않고 남들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어느 정도 답을 정해놓고 살고 있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주류가 되는 방법이라고, 그것이 중산층이 되는 방법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 방법론 안에서 진짜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 이 몇 가지 정형화된 길 안에 과연 내 자식의 행복도 있는지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가만히 이 세상을 한 번 보라. 이 세상은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다. 사기의 극지, 유혹의 극지, 배신의 극지, 가짜의 극지. 제 아무리 부와 권력을 다 가졌다 해도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다면 그것이 행복일까? 사회적으로 성공한 위치에 오르는 것, 뛰어난 기록을 내는 선수가 되는 것, 온 국민이 알 정도로 이름을 날리는 것 이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좋은 부분을 접어 내 아이들에게 읽게 했던 것은 결국 인성을 위한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축구에 미쳐 있는 놈이라 해도 내가 축구라는 매개로 의도하는 모든 행위는 딱 한마디로 줄이면 결국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솜씨를 알려면 상차림을 보고, 그 사람의 됨됨이를 하려면 설거지를 보라는 말이 있듯이, 어떤 분야든, 어떤 일을 하든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바르고 곧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균형 잡힌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올바른 태도를 지닐 수 있을지 책을 통해 잡아주고 싶었다. 나 역시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책을 집어 들었고, 내 아이들과도, 내가 만나고 접하는 모든 사람들과도 책의 놀라운 효용을 나누고 싶었다. 부모라면 끝없이 고민해야 한다. 나는 내 아이가 축구 선수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지 생각한다. 행복이란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다. 성공의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그것을 발견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부모의 짧은 생각으로 정한 길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 이 질문을 염두에 두면 인생의 많은 선택지 앞에서 조금은 수월하게 길을 택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말한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지금 가장 중요한 게 뭔지만 생각해 봐. 그것이 뭔지 알면 결정은 바로 내릴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걸로 결정을 해라. 사람은 항상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야 한다. 내가 보기에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이거라고 생각됐다면 망설이지 말고 곧장 그것을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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