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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

우리 편하게 말해요, 아무도 말하는 법을 제대로 알려준 적이 없잖아요 이제 같이 해요!

by J____H 2023.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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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잘하고 싶다는 욕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자라오면서 저는 말을 하는 것이 뭐 그리 대수인가 싶었어요. 말은 누구나 하는 것 아닌가 태어나 옹알이를 하고 엄마 아빠를 부르며 입을 떼고 그러면 누구나 말을 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죠. 그게 아니라는 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방송국에서 생방송을 진행하며 알게 되었어요. 발표하러 나온 자리에서 시종일관 염소 목소리를 내는 학생을 보면서 생방송 도중에 너무 떨려 졸도하는 출연자를 눈앞에서 보면서요. 심지어 주부 리포터로 나온 분은 갑자기 대본이 보이지 않는다고도 했죠. a4 용지보다 더 큰 b4 용지에 20포인트 굵은 글씨체로 출력을 해드려도 안 보인다고요

 

말을 하는 것,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



말로써 자신의 의사를 남에게 전달해 이해시킨다는 것이 실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언젠가 북 콘서트에서 사회를 본 후 뒤풀이에 합류한 날이었어요. 제 앞자리에 앉은 가수의 매니저가 느닷없이 질문하는 겁니다. 어떻게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할 거라 믿고 그렇게 말을 편하게 할 수 있어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방송이나 공연을 진행하시는 걸 여러 번 봤거든요. 늘 편안하게 얘기하시더라고요. 여기 온 사람들이 모두 나를 좋아할 거다 생각하면서 말하는 사람처럼 말이죠.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웃으며 얼버무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곰곰 생각해 보니 저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 기본적으로 거기 있는 분들을 믿는 것 같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하고 말이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의심이나 불안이 올라온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안 들으면 어떡하지 내가 실수하거나 말을 망쳐서 비난을 들으면 어떡하지? 그런 적은 없었어요. 실수해도 할 수 없지 망쳐도 괜찮아. 스스로 체화하기도 하고 배짱이 두둑하기도 해서겠죠. 하지만 생각해 볼수록 그뿐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왜 그럴까? 곰곰 되짚다 얻은 결론은 원체험이었습니다. 원체험이란 어떤 사람의 기억에 오래 남아 어떤 식으로든 구애를 받게 되는 유년 시절의 경험이라죠. 가족 상담 쪽에서는 원 가족을 중요시한다고 해요. 출가하기 이전에 원래 가족 말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키우면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이 형성되죠. 그런데 자녀에 대한 나의 태도에는 어린 시절 원 가족 안에서 겪은 경험이 반영된다는 겁니다. 엄한 아버지 밑에서 통제받으며 자란 사람이 부모가 되면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의 말이나 행동을 통제하려 하는 것 말이죠.  그와 비슷하게 원체험이 말하기의 기본적인 태도를 결정한다고 결론짓게 되었습니다. 딸 다섯 중 넷째로 태어난 저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나 봐요. 형편이 어려워 유치원에 다닐 수는 없었지만 담 넘어 유치원 수업을 쳐다보며 곧잘 따라 하곤 했고 아이들이 율동을 하면 저도 하고 노래를 부르며 따라서 불렀죠. 이런 저를 안쓰럽게 여긴 어머니가 초등학교에 일찍 들여보냈어요. 만으로 6살의 초등학생이 된 저는 신이 났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수업은 유치원과 별로 다를 게 없잖아요. 학교 종이 울리면 불이 나게 집으로 달려와 그날 하루 학교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중계방송했습니다. 선생님 말씀, 아이들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계속 말했죠.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학교 이야기는 저녁 식사 자리까지 이어졌습니다. 밥 먹을 때 말을 하면 복이 달아난다라는 옛말을 믿었던 아버지가 그만 좀 떠들고 밥이나 먹으라고 하면 어머니가 넌지시 제 편을 들어주셨어요. 놔두세요. 재미있잖아요. 뭐 그리 재미있겠어요 아이들 학교 생활이 다 거기서 거기였겠죠 게다가 제 위로 언니 셋이 먼저 학교도 다니고 졸업까지 했으니 어머니로서는 다시 보기 제 방송을 틀어놓은 기분이었겠지. 그런데 단 한 번도 그만하라고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아주 좋은 말의 원체험을 갖게 된 셈입니다. 내가 말을 할 때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엄마가 재미있게 들어준다. 아이에게는 이보다 더 신이 나는 일이 없겠죠. 그렇게 날마다 종알거리고 보고를 하면서 말하기가 조금씩 늘었으리라고 짐작해 봅니다. 동시에 마음속 깊은 곳에 믿음이 자라났을 것입니다. 엄마처럼 사람들도 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을 거야 그런 믿음이 저를 아나운서로 만든 것 같습니다. 듣기의 힘 특히 원가족 내에서 하게 되는 원체험인 경청은 이렇게 힘이 셉니다. 경청의 힘을 새삼 깨닫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다름 아닌 티타임에서요. 저는 22년 6개월 동안 모교 강단에 섰습니다. 그 시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티타임이라고 하겠습니다. 수업이 아니고요.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는 의욕이 넘쳤습니다. 학생들이 몹시 힘들었을 거예요. 매주 과제를 그것도 녹록지 않은 것들로 내주었거든요. 그때만 해도 학생들이 순했던 건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순순히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3, 4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왜 그렇게 매시간 촘촘하게 채우고 매주 과제를 내주었는지 그 까닭을요.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30대 초반의 겸임교수 방송 경력이 10년이 넘은 데다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까지 취득했지만 얼마나 부족한지는 누구보다 제가 제일 잘 알았습니다. 그걸 들키기 싫었던가 봅니다. 5년이 흐르고 6년이 되면서 깨닫게 되었죠.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며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것을. 우리 학교, 우리 학부에는 훌륭한 교수님들이 많이 계시니 이로는 그분들이 가르쳐 주실 거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다짐했습니다. 학생들이 가장 바라는 것, 그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선생이 아니라 선배인 저를 원할 것 같았습니다. 진출하고 싶은 분야에 먼저 나가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테니까요. 그래서 7년째 되던 해부터 학생들과 1대 1로 면담을 하기 시작했고 티타임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학교 앞 조용한 커피숍에서 학생을 한 명씩 만났습니다. 겸임 교수는 따로 연구실이 없으니까요. 10년 넘는 세월이었으니 애용하던 커피숍이 폐업해서 장소를 옮기기도 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던 커피숍에는 커피 머신 바로 앞에 작은 테이블이 있었어요. 주문받는 소리며 우유를 데우는 스팀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원탁에 놓인 미니 스탠드 불빛이 따스했습니다. 시행착오도 겪었어요. 처음에는 20분씩 만나다가 시간이 짧은 것 같아 한 시간으로 늘렸는데 너무 길어서 서로 힘들어지자 30분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교수와 따로 만나는 걸 불편하게 여기는 학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차츰 정리되었습니다. 학기 초가 되면 이렇게 말을 했어요. 여러분에게 30분의 데이트를 청합니다. 어떤 이야기든 좋으니 선배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저와 나누시면 됩니다. 부모님에게 얘기하자니 나보다 더 걱정하실 것 같아 망설여지는 이야기 제가 부모님만큼 걱정하지는 않겠지요 선배에게 의논하고 싶은데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니면 어떡하나 걱정되는 이야기 저는 여러분 개인의 이야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이렇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요. 친구에게 털어놓고 싶은데 나와 경험이 비슷하니까 도움이 안 될 듯한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저랑 하면 돼요. 만나기 하루 전에 메일을 보내주세요.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알려주세요.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 때문에 힘든지, 아니면 무엇으로 힘이 나는지 메일을 쓰다 보면 스스로 정리도 될 거예요. 고작 서너 줄 적어서 보내는 학생도 있었지만 a4 용지로 11장을 쓴 학생도 있었습니다. 즐거운 이야기를 하면서 깔깔 웃다 가기도 했지만 눈물부터 흘리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시간을 잘 지켰지만 저를 두 번이나 바람 맞힌 학생과 세 번째에야 만나게 된 적도 있었고요. 30분 동안 얘기를 나눈 후 신기하다는 듯 어른하고 둘이서 대화할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라고 말한 학생도 있었답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을 하기 전까지 15년 동안 1500명 남짓 만나다 보니 커피값만 해도 어마어마했습니다. 무엇보다 집중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앉은자리에서 옛일곱 명의 이야기를 연달아 들을 때면 지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왜 15년이나 계속했을까요? 배우는 게 많아서였습니다. 학생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알게 되고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것들을 이해하게 되었으니까요. 제가 진행하던 생방송 프로그램에 매주 나오던 한 정신과 전문의는 이런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학생들과 일일이 만나는 게 힘들기는 하겠지만 금희 님의 표정과 눈빛을 보면 정말로 사람을 이해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거죠. 제가 한 건 별로 없었어요. 들어주기만 했죠. 22년 반 동안 제 수업을 들은 2천여 명 중 몇몇 후배들과 지금까지도 독서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 한 후배가 얘기했어요. 선배님 미리 말씀 못 드려 죄송했지만 사실 티타임 때 선배님과 나눈 대화를 녹음했어요. 적잖이 당황했지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뭐라고 했어? 제 질문에 후배는 대답했습니다. 30분 중에서 27분 30초를 저 혼자 얘기했더라고요. 선배님은 이런 말씀만 하셨어요. 그랬구나 그래 힘들었겠네 장하다 기특하네 얘기를 나누다 보면 서너 명의 한 명꼴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 처음엔 당황했어요. 주문하는 손님과 응대하는 주인이 볼 수도 있는데 제 앞에 있던 학생이 갑자기 우는 거예요. 어머 왜 울어 울지 마 혹시 내가 뭐 실수라도 한 거야? 그러면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닦던 후배들 나중엔 알게 되었어요.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몰입해서 들어주는 경험만으로도 힐링이 되고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구나 그러니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들어주세요. 시간을 내고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들어만 주세요. 놀랍도록 가까워졌음을 느끼게 될 겁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일주일에 걸친 티타임이 끝나고 그다음 주 수업시간에 강의실로 들어서면 신뢰의 눈빛으로 가득 찬 학생들의 미소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듣기의 힘은 그런 겁니다. 낮게 천천히.

 

mbti가 뭐예요? 



요즘은 사람을 만나면 mbti부터 물어봅니다. 알파벳 하나라도 자신과 일치하면 무척 반가워하죠. 세상에 많은 사람을 고작 16가지 유형으로 나누는 데 반감을 품었던 저도 어쩔 수 없이 방송 프로그램에서 검사를 해봤습니다. 결과는 enfj 외향적이라네요. 맞습니다. 저는 꼬꼬마 시절부터 사람을 좋아했대요. 집에 놀러 온 어른에게 아장아장 걸어가 무릎에 앉았대요. 집에 딸린 일터에서 일하느라 바빴던 어머니 대신 동네 어른들 손을 잡고 마실 다니느라 집에 붙어 있지를 않았다고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친구를 사귀는데 어려움을 겪어본 적도 없습니다. 학년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제일 마음에 드는 아이에게 다가가 웃으며 인사했거든요. 안녕. 저를 부러워하는 분들이 있겠지요 mbti 맨 앞자리가 이 아닌 아이로 시작하는 내향적인 분들 말입니다. 하지만 부러워할 필요가 없어요. 내향적이기 때문에 에너지를 모아서 적절히 쓰는 법을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다들 외향적인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많은 이들이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에게 끌리고 신뢰감을 느끼거든요. 2만 3천400명 안팎의 초대 손님을 만나며 아침 토크쇼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시절, 제가 느낀 바도 그 점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신뢰하는 유형은 따로 있구나. 요즘은 달라졌겠지만 예전에는 보험사에서 해마다 계약을 가장 많이 체결한 설계사를 보험 여왕이라 부르고 시상식을 했습니다. 실제로 미스코리아처럼 왕관을 쓰고 긴 망토를 끌며 행진하는 곳도 있었죠. 연말쯤 그분들을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3년 연속 만나본 세 군데 보험 여왕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내향적이고 말수가 적으며 목소리가 작은 편이라는 것. 그러고 보니 모두 체구도 자그마한 편이었어요. 옷도 참 얌전했고 차분하게 얘기 나누는 것도 공통적이었습니다. 목소리가 우렁차고 성격도 괄괄하며 유머 감각 넘치는 캐릭터의 보험 여왕을 떠올리지 않으셨나요? 보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일 겁니다. 사고든 질병이든 뜻밖의 일이 생겼을 때 믿고 찾아가 의논하고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도와줄 사람 내성적이면서 꼼꼼하고 믿음이 가는 사람이겠지. 어디에서 무얼 하든 마찬가지 아닐까요?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진출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비슷할 거예요.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고 한 계단 위로 올라서려면 면접을 보거나 시험을 치르잖아요.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 역시 신뢰일 겁니다. 이 사람은 믿을 만한 사람인 것 같다, 믿어온 사람으로 보인다, 우리와 함께 일을 하면 제 몫을 잘하겠다. 그런 마음이 들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토익 점수나 학점도 중요하겠죠. 하지만 최종 단계에 이르러 점수가 엇비슷한 상황이라면 결국 신뢰를 택하겠지 믿을 만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 자신이 그런 사람임을 알리는 게 중요할 겁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만 그런 사람으로 보일까요? 우선 상대방이 하는 말을 잘 들으려 노력하자고 앞에서 말씀드렸지요. 한 걸음 더 나아가 믿을 만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팁을 드리고 싶습니다. 낮게 천천히 여러분 곁에 있는 아이를 떠올려 보세요. 아이는 누구나 귀엽고 예쁘지 그 아이가 말을 할 때 가만히 지켜보세요. 
아이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합니다. 높게 빠르게. 20대에서 30대까지는 되게 그렇게 말을 해요. 저도 20대에 출연했던 방송을 보면 어찌나 톤이 높고 또 어찌나 빠른 속도로 말을 하는지 부끄러워서 차마 보지 못할 정도입니다. 높고 빠르게 말을 하면 발랄하거나 귀엽게 보이지만 신뢰가 가지는 않습니다. 뉴스를 볼까요? 신뢰감의 대명사인 앵커는 남녀 구분 없이 낮은 톤으로 힘을 주어 말합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배우 중에서 어쩐지 믿음 가는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열이면 열 천천히 말할 겁니다. 그러니 믿을 만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면 지금부터 연습해 보세요. 살짝 낮은 톤으로 조금 천천히 말하기 이 두 가지 팁은 캐나다 교포 학생에게 배운 거였어요. 꽤 오래전 아나운서실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사무실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 마침 저를 찾더라고요. 아주 세련되고도 예의 바르게 말하던 그 학생은 방학 동안 모국어를 배우러 왔고 귀국을 앞두고 있다고 했어요. 우리말을 공부하며 제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교재 삼아 들었는데 떠나기 전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고요. 제가 더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통화하다가 곧바로 다음 날 만나기로 했죠. 여학생의 말씨에 제 마음이 스르르 열렸나 봅니다. 커피숍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다가 물어봤어요. 캐나다에서 태어났다면서 어떻게 그렇게 우리말을 세련되게 잘하는지를요. 그녀의 대답이 바로 이거였습니다. 낮게 천천히. 어학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대요. 우리말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려면 두 가지만 기억하라고 하셨어요. 낮게 천천히. 캐나다에서 태어나 영어부터 배운 교포 학생이 한국 아나운서 귀에도 쏙 들어올 만큼 신뢰감을 준 말하기는 톤과 속도의 비밀이 있었습니다. 낮게 천천히. 그럼 연습해 볼까요? 처음 만났을 때 인사말부터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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