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지성
어느 날 아잔차 스님이 사원 박 대나무 평상에 앉아 여러 승려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스님은 숲을 베는 데에 쓰는 굵직한 칼을 들어 보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들 그거 아는가? 우리 정신은 어떤 면에서 이 칼과 흡사하다니 내가 이 칼을 아무 때나 사용하면 어떻게 되겠나? 플라스틱도 자르고, 콘크리트도 자르고, 유리, 금속, 나무, 돌까지 마구 자른다고 상상해 보게. 날이 금세 무뎌져서 제 역할을 할 수 없겠지 반면에 나무를 자를 때 외에는 칼집에 꽂아두고 쉬게 하면 이 칼은 제 역할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겠지. 그것도 아주 오래오래. 그 비유는 제 마음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제정신을 온전하고 바르게 유지하려면 날카롭고 효과적으로 발휘하려면 때로 쉬게 놔줘야 한다는 말씀이었죠. 우리는 인간이 지식에 도달하는 방식이 한 가지 이상이었다는 점을 자꾸 잊어버립니다. 이성이 우리의 도구함에 들어 있는 유일한 도구가 아니라는 점도 자꾸만 간과하게 됩니다. 저는 이성이 별 의미 없는 특성이라던가 덜 중요한 능력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이성은 우리에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을 수없이 제공했습니다. 기술, 과학, 의료, 민주주의, 평등 등 소중한 발상과 체제가 만들어지는 원천이었죠.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성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에 도달하고 결정을 내리기 위한 다른 방식도 있습니다. 바로 영감의 순간입니다. 불교도들은 이를 지혜라고 부릅니다. 아울러 그들은 명상과 지혜는 확고하게 이어진다는 것을 압니다. 때때로 내면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문득 주위가 분명해집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마음의 소리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직관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그것을 순간의 지성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뭐라고 부르는지 어떻게 찾아냈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에게 그러한 능력이 있음을 깨닫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바로 그 사실 덕분에 우리는 지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외부에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 특히 더 그렇습니다. 우리 정신을 쉬게 하고 내부에 가만히 귀를 기울일 때가 그 어느 때보다 어렵지만 그것은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뭐든 말씀만 하세요. 지금쯤 다들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옛날이야기를 아주 좋아한답니다. 어디에서 유래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들려주고 싶군요. 어느 날 어떤 남자가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중턱쯤 올라간 남자의 눈에는 앞으로 닥칠 절벽이 얼마나 가파른지가 잘 보였습니다. 유일하게 있는 길은 비좁고 비에 젖어 미끌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길 한가운데에 유난히 동글고 반들거리는 돌이 있었죠. 하지만 남자는 그 돌을 미처 보지 못하고 그만 밟아버렸습니다. 순식간에 남자는 절벽 쪽으로 미끄러져 떨어졌습니다. 남자는 뭐라도 붙잡으려고 필사적으로 두 팔을 허우적대다가 천만다행으로 절벽 바위틈에서 수평으로 자란 작은 나무를 가까스로 붙잡았습니다. 남자는 나무를 꽉 잡고 버텼습니다. 남자는 지금껏 영혼이나 내세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막연한 종교적인 믿음조차 가져본 적이 없었죠.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나무를 꼭 잡은 남자의 두 팔에 천천히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두 팔은 이제 조금씩 떨리고 있었죠. 발아래로는 500미터 낭떠러지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마치는 남자는 더 버티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습니다.ㅠ겁이 덜컥 난 남자는 하늘을 쳐다보며 확신 없이 머뭇머뭇 말했습니다. 저기 하느님 제 말 들리세요? 당신이 진짜로 존재한다면 나를 좀 도와줄 수 있나요? 잠시 뒤 하늘에서 깊고 위험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를 불렀느냐? 너를 도와줄 수는 있다만 반드시 내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 남자가 말했습니다. 뭐든 말씀만 하세요. 하느님이 답했죠. 손을 놓아라. 남자는 몇 초 동안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습니다. 저기요 혹시 거기 누구 다른 분은 없나요? 저는 이 남자에게서 저 자신을 봅니다. 저 역시 확신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는 딱 저렇게 행동하거든요. 절대 이 생각을 내려놓을 수 없어. 왜냐하면 그것이 옳으니까. 누구나 이러한 논리에 빠지곤 합니다. 우울하고 무기력할 때에는 더욱 특정 신념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됩니다. 그러한 생각이 우리를 얼마나 해칠 수 있는지, 또 해로운 생각을 믿을 때 얼마나 큰 정신적 고통을 자초할 수 있는지 간과하기 쉽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떠올라도 다음 순간 우리는 고개를 젓지요. 그래 뭐 그럴듯하게 들리는데 하지만 이 생각은 절대로 내려놓지 않을 거야. 이게 사실이니까 이게 옳으니까. 그 순간 이미 좁아져버린 자신의 관점에선 그게 사실입니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옳아요. 하지만 그 확신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내려놓기는 어쩌면 제가 배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일 겁니다. 내려놓기의 지혜는 참으로 심오합니다. 내려놓을 수 있을 때 얻는 것은 끝이 없지요. 우리를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끼게 하고 외로움과 두려움을 부르는 생각들은 내려놓는 순간 힘을 잃습니다. 설사 그 생각이 옳다 하더라도요. 물론 말은 쉽고 실천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장 내려놓기 어려운 생각이 결국엔 우리에게 가장 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들여다보길 바랍니다.
마법의 주문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어떠한 언어로든 진심으로 세 번만 되뇐다면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 아침 불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스님의 손바닥 안에 있었죠.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다들 숨죽이고 스님의 다음 말을 기다렸죠. 스님은 몸을 살짝 내밀더니 극적인 효과를 내려고 한 번 더 뜸을 들인 뒤에 입을 열었습니다. 다들 그 주문이 뭔지 궁금하시죠?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 뒤로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저는 그 주문을 들려주던 스님의 목소리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뇌가 분석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진실을 인식하고 반응할 때의 기분을 다들 알 겁니다. 그러한 말은 여러분의 몸과 마음에 새겨져서 절대 사라지지 않지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주문은 제가 가장 필요할 때 퍼뜩 떠올리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일단 떠올리면 언제나 확실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더 겸손하고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합니다. 이 지혜는 시대를 초월하며 특정한 종교에 한정되지도 않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참으로 단순하고 명쾌한 진실이지만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잊어버립니다. 다음부터의 글은 저자가 승복을 벗고 나서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걸 알고 그 투병 중에 쓴 글입니다. 빼앗길 것이다 어렸을 땐 제 몸에 이곳저곳이 걱정스러웠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곳들은 얼마든지 있었고 그곳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불만을 드러 놓았죠. 하지만 이젠 저와 제 육신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오랜 친구 같다고나 할까요. 우리는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늘 함께 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젊지 않습니다. 그 오랜 세월을 함께 해준 제 몸에게 고맙습니다. 그 고마움을 어떻게든 표하고 싶습니다. 숱한 세월 동안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줘서 정말 고맙다. 너는 지금 힘든 싸움을 하고 있어. 참으로 네가 안쓰럽단다. 너는 뭐 하나 거저 얻지 못하면서도 나를 위해 온 힘을 다하는구나. 네가 필요한 공기조차 얻지 못하는 데에도 그런 너를 도우려고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알아 다니 턱없이 모자라지. 그런데도 너는 날마다 네가 가진 모든 걸 걸고서 힘껏 싸우는구나. 너는 나의 영웅이다. 또 다른 동작이 불가능해지더라도 다시는 너한테 화내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너희에게 귀를 기울일게. 네가 줄 수 있고 또 주고 싶어 하는 것보다 더 많이 달라고 요구하지 않을 거야. 지금까지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약속이 있어. 네가 더 버틸 수 없을 때에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할 거라고 엄숙히 맹세할게. 그때가 오면 다 받아들이고 감사한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게. 믿고 받아들이면서 편히 쉴게. 우리가 누렸던 놀랍도록 멋진 삶에서 기쁨을 얻고 아주 의연한 목소리로 너희에게 속삭일 거야. 너와는 이렇게 끝나겠지만 나는 앞으로도 계속 갈 거야. 승료로 산 지 몇 년 안 됐을 때 어느 날 오후, 저는 밀림의 대나무 오두막 밖에서 행선을 하고 있었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데 아잔 브람 스님의 설법이 들렸습니다. 스님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어느 시점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마지막이 왔을 때 레드 제플린의 신나는 콘서트가 끝나고 흥에 겨운 채 시원한 밤공기 속으로 나서는 그런 기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스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았습니다. 예상보다 빨리 마지막 순간에 다가가는 지금 저의 기분은 그와 비슷합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일말의 후회나 걱정 없이 제 삶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 경이로움과 고마움은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지. 진짜 멋진 모험이었어. 내가 이렇게 많은 경험을 할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한생에 세 사람의 삶을 살았던 것 같아. 어떻게 항상 나보다 더 마음이 넓은 현명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었을까? 그간에 저질렀던 온갖 경솔하고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했던 일을 생각하면 어떻게 이 정도의 고생만을 겪고 살아갈 수 있었던 걸까? 도대체 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나 많이 좋아해 줄까?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모든 일들이 잘 풀릴 수 있었던 걸까? 예전에 루앙폰준이라는 이름의 현명하고 사랑스러운 스님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삶의 끝자락에 이르렀을 때 유난히 치명적인 간암을 선고받았습니다. 생존 가능성이 희박했죠. 그런데도 주치의인은 스님에게 방사선 치료와 화학 요법, 수술까지 포함된 길고 복잡한 치료 계획을 제시했습니다. 의사가 말을 마쳤을 때 루앙폰 준 스님은 함께 온 승려에게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의사들은 죽지 않나 봐.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제 심금을 울렸거든요. 왜 우리 문화권에서는 죽음과 싸우고 죽음에 저항하고 죽음을 부정하는 것을 영웅적이라고 묘사할까요? 죽음은 왜 늘 무찔러야 할 적이나 모욕으로 실패로 그려질까요? 저는 죽음을 삶의 반대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탄생의 반대에 더 가깝죠. 증명할 순 없지만 저는 늘 죽음 저편에 뭔가가 있다는 확신을 느껴왔습니다. 때로는 뭔가 경이로운 모험이 저를 기다린다는 느낌마저 들죠. 숨을 거둘 날이 오면 그날이 언제든 저더러 싸우라고 하지 말아 주세요. 오히려 제가 다 내려놓을 수 있도록 어떻게든 도와주길 바랍니다. 제 곁을 지키며 다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세요.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들을 다 기억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때가 됐을 때 제가 늘 원했던 끝이 어떤 것인지 기억할 수 있도록 당신의 열린 손바닥을 보여주세요. 엘리자베트 그때 아직 내 곁에 누워 있지 않다면 얼른 침대에 올라와서 나를 안아주구려. 그리고 내 눈을 바라봐주세요. 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게 당신의 눈이었으면 좋겠소.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이 1월 17일 한낮이었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주어지는 음료를 한 잔 마시고 조용히 평화롭게 잠들었습니다.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이 미리 알리지 않아 미안합니다. 모든 것이 제가 원하던 그대로였습니다. 저는 며칠 전에 그랬듯 여전히 제가 죽는 순간 가장 먼저 안도감을 느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가여운 몸은 드디어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다정한 몸이요. 싸워주어서 고맙소. 싸움은 드디어 끝났습니다. 그다음에는 분명히 경의를 느끼게 되겠죠. 지난 30년간 저는 이 순간과 그다음에 따를 일들을 준비하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그런데도 깜짝 놀라게 될 겁니다. 죽음 뒤에 사라질 그 모든 것을 내려놓거나 적어도 살짝만 쥐고 살아가세요. 영원히 남을 것은 우리의 업이지요. 세상을 살아가기에도 떠나기에도 좋을 업보만을 남기기를 바랍니다. 이제 저는 축복받은 자의 기쁨을 느끼면서 어떠한 예측도 불허하는 모험을 떠납니다. 걱정도 의심도 더는 없습니다. 당신의 존재가 햇볕처럼 따뜻했습니다. 온 마음으로 감사합니다.
자작나무 생각
저자는 떠오르는 생각을 모두 다 믿지 마라라는 깨달음을 처음 얻게 되었다고 했는데 그것을 부처님이 준 첫 번째 선물이었다고도 말했어요. 그럼에도 우리는 생각이라는 것을 선택하지는 못합니다. 마음속에 불쑥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방법은 없지만 그 생각을 믿을지 말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순간의 지성 인간에게는 이성이라고 하는 엄청난 도구가 있어요. 이성은 기술, 과학, 의료, 민주주의 평등 이러한 발상과 체제가 만들어지게 되었던 원천이라서 아주 소중한 덕목인데요. 우리에게는 이성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식에 도달하고 결정을 내리기 위한 다른 방법도 있는 건데 그것이 바로 영감의 순간입니다. 이를 불교에서는 지혜라고도 했고요. 누군가는 마음의 소리 또는 직관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저자는 이것을 순간의 지성이라고 했어요.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는 이것을 저는 저는 조금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데 제가 보는 관점에서는 영성이었습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대요. 이성적인 마음은 하인이다. 반면 직관적인 마음은 신성한 선물이다. 우리가 창조한 사회는 하인을 섬기느라 선물을 잊어버렸다. 그러니까 신이 준 선물인 순간의 지성, 직관 또는 영성을 잊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거기 누구 다른 분 없나요? 그렇죠? 하느님 내 말 들리세요? 틀림없이 그랬단 말이에요. 뭐든 말씀만 하시라고 절벽에서 떨어질 것 같으니까 나만 살려주면 뭐든 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손을 놓으라고 아 무슨 방법이든 내가 만들어 주겠다고 신이 그러는데 무지한 우리들은 고개를 그때 갸웃거리면서 이런다는 거죠. 거기에 혹시 누구 다른 분은 안 계신가요? 이런 경우가 진짜 많았어요. 내 생각은 절대 내려놓지 못하겠다는 거잖아요. 그게 옳다고 믿으니까 옳다고 믿지 않는 데에도 번복하기 싫어서 또는 어떤 특정 신념에 사로잡혀서 잘못된 판단을 하고는 합니다. 내려놓기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었을지 모르겠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를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끼게 하고 외로움과 두려움을 부르는 생각들은 내려놓는 순간 힘을 잃는다고요. 틀리고 잘못된 것은 내려놓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심지어 그것이 옳은 것, 틀리지 않은 것일지라도 내려놓고 보자고 저자는 말합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세 번 반복하라고 했습니다. 이 마법의 주문은 이것이었죠.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이후부터는 루게릭병의 진단을 받고 나서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문장들이 있었어요. 내가 나에게 이렇게 다정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누구도 아닌 내가 나에게 결국은 내가 나의 마지막 사람이잖아요. 끝까지 함께 가는 존재잖아요. 너는 지금까지 잘 준비해 왔어. 아무런 후회나 미련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숱한 세월 동안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고 지금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네가 너무 안쓰럽다고 날마다 네가 가진 모든 걸 걸고서 힘껏 쌓아오는 너는 나의 영웅이라고 우리가 같이 누렸던 놀랍도록 이 멋진 삶을 뒤돌아보면서 아쉽겠지만 나는 너와 그때 이별을 하겠다고요. 또한 저자의 아내였던 엘리자베트에게 전한 마지막 말에서 저는 아주 아주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렸습니다. 이런 사랑의 고백을 하면서 떠날 수 있다면은요. 잠깐 머물렀다 가는 인생 누구라도 아무 후에도 미련도 없을 것 같아요. 엘리자베트 내가 숨을 거둔 순간 그때 아직 내 곁에 누워 있지 않다면 얼른 침대에 올라와서 나를 안아주세요. 그리고 내 눈을 바라봐 주세요. 내가 이 생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게 당신의 눈이었으면 좋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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