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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

생에 감사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에 감사해.

by J____H 2023.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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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대본에서 우리 모두는 배우



배우를 한다고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미쳤다며 모두 반대했지만 아버지는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유명한 배우의 한 마디는 어떤 정치인이나 학자 못지않게 영향력이 있다. 찰리 채플린을 봐라.
웃기는 짓을 하는 것 같지만 그 사람이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 아니? 좋은 배우가 되거라. 좋은 배우가 되면 톨스토이나 셰익스피어처럼 세상에 의미 있는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를 많이 해라. 그리고 책을 많이 읽어라. 내가 태어나기 직전, 아버지는 높은 연단에 서서 많은 군중에 박수를 받는 꿈을 꾸었습니다. 아버지 옆에 놓인 어항 속에 예쁜 빨간 붕어가 헤엄치고 있었는데, 사람들의 박수는 어항을 향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우리 혜자는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해 박수를 받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금붕어가 한 마리라 외롭겠다 하셨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은 그저 국어시간이면 책 잘 읽는 정도의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이나 간섭을 모르고 살아서 어려서부터 웬만한 일들은 혼자 하고 혼자 해결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특별히 예뻤다거나 뛰어난 재주권도 못 되었고, 그래서 그런지 부모님이나 교사들이 내게 별로 큰 기대를 걸지 않았습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를 미치도록 좋아해서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영화를 봤습니다. 수업 시간이 왜 그렇게 지루했던지 학교가 끝나는 종이 울리기 무섭게 감옥에서 풀려난 기분으로 뛰어나갔습니다. 영화관에 가서도 보았고, 텔레비전에 AFKN에서 틀어주는 흑백 영화로도 보았습니다. 영어 대사를 이해할 수 없으면 영상만으로도 보았습니다. 그 어떤 영화보다도. 앤서니킴과 줄리에타 마시나 주연의 길, 로버트 테일러와 비비아니가 주연한 애수는 나의 인생 영화였습니다. 길을 보고 그 영화에 나오는 여자 배역에 반했습니다. 짐승 같은 곡예사 잔파노에게 끌려다니면서 북을 치고 춤을 추는 등 온갖 일을 다 하는, 어딘가 좀 모자라지만 천사같이 마음씨가 고운 젤소미나 같은 역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철학 박사 학위까지 갖고 있는 배우 줄리에타 마시나가 그런 바보 같은 연기를 해내는 것을 보고 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KBS 탤런트 공채 1기생으로 뽑혀 연기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열정만 가득했지 연기의 기초가 없었습니다. 손끝 하나 움직이는 것도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말씀대로 촬영이 없을 때는 열심히 책을 읽었습니다. 세계의 문학전집을 방에다 가져다 놓고 한 권씩 읽어나갔습니다. 그 밖에도 명작 소설, 추리 소설 등 하루 한 권 책을 읽어야 내 할 일을 다 한 것 같았습니다. 책을 읽고 있으면 너무 행복했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잃고는 몇 날 며칠 동안 잠을 설쳤습니다. 죄는 무엇이고 벌은 무엇일까 내 기준의 죄는 무엇이고 신의 기준에서 벌은 무엇일까 그렇게 문학 작품은 나에게 사과할 재료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대본을 받으면 시놉시스를 보면서 내가 이 역을 맡으면 세상에 무슨 영향을 줄 수 있나 그런 생각을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나에게 준 가르침이 그것이었습니다. 내가 맡은 배역이 아무리 인생의 속박에서 고통받는 역이라 해도 그 속에 가늘기만 한 희망이 보이는가 그것이 내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었습니다. 주인공이 삶의 밑바닥을 헤매어도 그곳에 희망이 있나 그 희망을 연기할 구석이 있나 내일의 이야기가 혹은 그다음이 보이는가 끝없는 절망 속에서 이 여자가 그냥 죽음을 선택해 버리나 그렇지 않고 아무리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이 어딘가에는 있나 그것을 찾고 그것을 연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배우는 연기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배우에게는 유일한 빛이고 희망입니다. 또한 그것이 배우가 세상에 줄 수 있는 희망의 빛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강수연에게 모든 것이 너무 일찍 왔고 일찍 가버렸습니다. 갓 스무 살 넘은 나이에 세계적인 무대에서 연기상을 타고 너무 어려서 월드스타가 되고 나니 아무것이나 할 수도 없고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없게 된 것입니다. 작품이 있어야 배우로서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고민하고 설레고 한 장면을 100번 넘게 연습해 보고, 그것이 배우를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때 배우는 살아있다고 느낍니다. 그것이 은총의 순간입니다. 그렇게 고민하고 가슴 설레는 것이 있을 때 삶이 은총으로 빛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배우로서는 이미 죽은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삶이 되는 것입니다. 삶이 뒤엉키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더라도 배우는 자신이 연기를 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슨 재미로 살까요? 오래전에 읽은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가 생각나서 다시 읽었습니다. 욕망에 눈이 멀어 불륜과 배신을 일삼으면서 파국을 향해 가는 부부 관계와 남녀 이야기입니다. 요즘에 텔레비전 드라마로 만들었다면 아마도 막장 드라마가 되었을 내용입니다. 다 읽으면 톨스토이가 당시의 위선적인 귀족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 간에 진실한 관계가 무엇인지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는 소설의 유명한 천문장도 인상적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내가 대사로 해보고 싶은 말이라서 여러 번 외워보기까지 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등장인물 중 한 명인 레빈이라는 남자가 자신의 농장에서 풀을 베는 장면입니다. 사실 제목은 안나 카레니나이지만, 내가 보기에 진정한 주인공은 이 남자입니다. 톨스토이가 세상과 사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 사람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거부당하고 상처 입은 레비는 자신이 물려받은 영지로 가서 농부들과 함께 일합니다. 하지만 농부들은 부잣집 아들인 이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농부들과의 벽을 허물지 못합니다. 그래서 농부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직접 풀베기를 합니다. 처음에는 많이 서툴지만 계속 풀을 베어나가다가 어느 순간 그 일에 완전히 몰입하게 됩니다. 어찌나 몰두했는지 30분 동안 배웠다고 생각하지만 몇 시간이 흐릅니다. 레비는 풀을 베면 벨수록 더욱더 무아지경의 순간을 느끼게 되었다. 그의 손이 낫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낫 자체가 저절로 풀을 베었다. 그럴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몰입하면서 자신이 지주라는 신분도 있고 마음의 상처도 잊어버립니다. 그렇게 일하는 것을 보고 농부들도 그 사람과 하나가 된 걸 느낍니다. 그 몰입으로 인해서 남자와 농부들이 하나로 연결됩니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연기자로 살아오면서 몰입의 순간들을 많이 가진 것입니다. 어떤 것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반쯤은 몽유병자처럼 흉내만 내면서 살아가는 나를 잘 아시는 신이 내가 몰입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작품들을 내 앞에 가져다주셨습니다. 그러면 흐릿한 불빛처럼 존재하던 나는 뜨거운 불로 타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 소설의 주인공 남자가 자신이 지금 풀을 베고 있다고 생각하면 풀 베는 줄이 비뚤어지고 일이 잘 되지 않았다고 하듯이 내가 지금 누구의 역을 연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연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나를 잊고 몰입할 때 오히려 나의 연기가 가장 좋았고 또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몰입하는 순간 인생의 허무와 고통, 슬픔, 갈등, 부질없는 생각들을 다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어디에도 물들지 않은 순수한 나 자신이 되고 어느 때보다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생애 모든 것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그토록 부족한 인간인데 나를 배우로 만들어 주셨으니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기 생활을 정말로 그만둘 때가 되면 그것으로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마지막 문장을 대사처럼 외웁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내 인생은 매 순간순간이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혜자에게 나 자신이 납득할 때까지 대사를 백 번도 더 읽습니다. 아까 했던 것과 지금 하는 것이 다르니까. 아흔아홉 번째 했을 때는 몰랐던 것을 백 번째 했을 때 느껴지는 것이 있으니까 읽을수록 느껴지니까 대본을 계속 읽고 싶어 집니다. 잘 쓴 대본은 읽을수록 깊어집니다. 우리가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을 때처럼 건성으로 읽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연극을 할 때 특히 그것이 두드러집니다. 연극은 미리 대본을 줍니다. 일 년 전에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 계속 그 대본을 읽습니다. 보는 사람은 그게 그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얼마나 다른 감정인지 알기 때문에 날마다 대본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 계속 새로운 것이 찾아지니까 다른 것을 찾으려고 애씁니다. 그러면 꼭 보입니다. 처음부터 다 느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가 미처 느끼지 못하고 쓴 것까지도 배우는 느껴야 합니다. 그것이 이름난 배우를 쓰는 이유 아닐까요? 작가가 쓴 것보다 더 무엇인가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먹고살만한데 왜 저렇게 사서 고생을 하며 아직도 저러고 사는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이 기쁨을 모르니까 그렇습니다. 자기 인생에 솔직하고 진실한 사람이라면 이 말을 다 알아들을 것입니다. 여기까지 하면 됐어하고 멈출 수도 있습니다. 대사 다 외웠고 리허설 다 했으니 다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결코 뛰어난 작품이 될 수 없습니다. 드라마를 하고 나면 사람들이 어떻게 봤을까 궁금하고 마음이 설렙니다. 그것이 연기자로 살아가는 보람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해도 좋아라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자기를 나타내고 싶어 글을 쓰고 연기를 하며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나를 어떻게 볼까 아무리 초연한 것 같아도 매번 고민되고 떨립니다. 모든 대사를 가슴으로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갔니라는 대사 한 줄을 놓고 왜 하필 갔니라고 썼을까 갔구나 갔다도 있는데 갔니로 쓴 이유가 무엇일까 이 작가는 이 장면에서 무엇을 원했을까 그런 고뇌를 계속합니다. 예전에는 쪽대본 그러니까 드라마에서 시간에 쫓긴 작가가 급하게 보낸 바로 찍을 장면의 대본을 많이 주었습니다. 나는 톨스토이가 써도 쪽대본은 안 한다라고 했습니다. 배우도 작가가 쓴 것을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합니다. 배우가 꼭두각시 인형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냥 외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갔니 갔다 갔구나 이 차이를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배우가 할 일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니 한 작품 끝나고 나면 너무 기운이 빠져서 날마다 널브러져 있습니다. 나는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어찌 보면 늘 텅 비어 있습니다. 매미 허물처럼 연기를 할 때 마음과 머리를 너무 써서 끝나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토크쇼 같은 곳을 나가지 않습니다. 나는 이미 연기로 내가 할 건 다 했습니다. 그래서 저 드라마가 저 연극이 곧 나예요 라며 인터뷰를 여러 번 거절했습니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의 글을 읽고 있으면 행주 냄새가 납니다. 그분이 내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에 추천서를 써주신 글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김혜자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나라도 저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에게 내가 아니 모든 여편네들이 쉰 것처럼 오싹해질 때가 있다. 저런 연기의 깊이는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혹시 드라마 밖에서의 그녀는 힘이 다 빠져 무기력하게 지내는 건 아닐까 궁금해하곤 했다.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나를 보신 것입니다. 평소에 내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아마 그분도 그런 거겠지 소설 한 편 완성하고 나면 그러시겠지 우린 같은 과 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는 것입니다.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다.



눈이 부시게는 한 여자의 일생을 그린 드라마입니다. 김석윤 연출자가 이 작품을 김혜자 헌정 드라마라고 했습니다. 그럼 나 죽어야 해요? 하고 물었더니 산 사람에게도 헌정합니다 하며 웃었습니다. 내가 한 대사 중에 방영 후 유명해진 70대에 비로소 알게 된 것들이라는 제목의 대사들이 있습니다. 노인들의 모습을 흉내 내며 노인들 보면 꼭 슬로모션 걸어 놓은 것 같지 않아? 횡단보도 같은 거 건널 때 보면 말이야. 하면서 웃는 스물다섯 살 친구들인 현주와 상은에게 극 중의 혜자가 말합니다. 너희가 뭘 알아? 무릎이 안 좋아서 그렇게 걷는 거야. 마음으론 벌써 백 미터 뜀박질했어. 너희들한테는 당연한 거겠지만 잘 보고 잘 걷고 잘 숨 쉬는 거 우리한텐 그게 당연한 게 아니야. 되게 감사한 거야. 너희가 그걸 알아? 사람들이 이 장면을 보고 많이 공유한다고 들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70대를 받아들이기로 한 혜자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체력 테스트입니다. 몇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고 달리기는 아예 불가능합니다. 젊을 때는 살만할 때는 잘 모릅니다. 꼭 못 걸어봐야만 압니다. 신이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인생에는 언젠가는 걷는 것에 감사하고 숨 쉬는 것에 감사하고 매사에 감사할 날이 찾아옵니다. 스물다섯 살 때는 밥만 먹어도 기운이 넘쳤지만 칠십 대가 된 혜자에게는 이정은 배우가 역을 맡은 엄마가 챙겨준 약이 가득합니다. 그 색색의 알약들을 보며 혜자는 말합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 나이만큼 약을 먹는 거나 다름없다. 예전 어르신들이 밥상 앞에서 밥맛이 없다는 얘기를 하던 게 이해가 간다. 식사보다 그 이후에 먹어야 하는 수많은 약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배가 부르니까. 혜자는 약을 접시 위에서 이리저리 굴려보며 중얼거립니다. 예전에 티브이에서 봤던가 양식장 속의 연어들이 밥과 그리고 같은 양의 항생제를 매일 같이 먹으며 작은 수조에서 살고 있었다. 그쯤 되면 연어들은 스스로 사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약발로 사는 거였다. 앞을 가로막는 세찬 물살도, 매서운 곰의 발톱도 경험해보지 못한 연어는 그러고 나서 몇 개의 알약을 삼키고 물을 마십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연어초밥이 먹고 싶어 집니다. 자신이 70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혜자는 씩씩하게 살아가기로 결심하지만 잠을 이루지 못하는 엄마 옆에 앉아서 날마다 느끼는 자신의 변화를 고백합니다. 그냥 궁금했어. 여기서 얼마나 더 나빠질까 요즘 아침마다 일어날 때 좀 놀라. 하루가 다르다는 게 이런 말이구나. 어젠 분명히 저기까지 걸었는데 오늘은 숨이 가빠. 앞으로 얼마나 더 나빠지는 건가 궁금해서 화장실 가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못 간다며 늙으면 나도 좀 더 차례차례 늙었으면 받아들이는 게 쉬웠을까 싶은 거지 그냥. 그러자 엄마가 말합니다. 다시 아기 때로 돌아가는 거라고 생각하면 단순해져. 이제 누군가의 도움 없인 살 수 없는 때로 돌아가는구나. 그런 드라마가 마지막으로 향해갈 때 혜자는 말합니다. 긴 꿈을 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르겠습니다. 젊은 내가 늙은 꿈을 꾸는 건지 늙은 내가 젊은 꿈을 꾸는 건지. 저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습니다. 나의 인생이 불행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억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행복했던 기억부터 불행했던 기억까지 그 모든 기억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그 기억이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무섭습니다. 눈이 부시게 마지막 엔딩 내레이션에 대본 한 부분을 찢어 들고 백상 예술대상 시상식에 간 날이 떠오릅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다. 드라마 속 장면이 아닌 시상식장 무대에 홀로 선 나는 이 내레이션을 잘 외워 독백처럼 연기하고 싶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삶을 누릴 자격이 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삶의 아름다움을 그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그렇습니다. 손이 바쁘고 주변이 어수선해집니다. 목소리가 커지고 말이 많아집니다. 어느 순간 내가 왜 이렇게 말을 많이 하고 있지 하고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습니다. 그날도 그렇게 부산스럽고 수전스러웠지만 그 자리에 있던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이 때론 불행하고 때론 행복하다는 것을. 삶이 한낮 꿈에 불과할지라도 그래도 살아서 좋다는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리는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낮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큼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살기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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