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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 25년간 세계 최고의 인재들과 일하며 배운 것들

by J____H 2023.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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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조력자의 삶을 살다가



삼성전자 근무 시절 디자인한 세계 최초 원형 스마트 워치의 성공으로 직장생활 20년 만에 업계의 주목받는 인물로 떠올랐다. 현재는 구글 본사의 핵심 부서인 검색과 인공지능팀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미술 실기 시험에서 100점을 맞은 것을 계기로 미술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화여대, 미대에 진학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했다. 대학교 3학년 때 컴퓨터 강사로 일했는데, 그녀는 그녀의 컴퓨터 실력이 수강생들과 다를 바 없는 초보자였다는 것. 하루 공부해서 하루 가르치는 일을 반복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의외로 수강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었다. 저지르면 수습할 힘이 생긴다는 믿음은 이때 생겼다. 대학을 졸업하고 디지털 조선일보와 시세이에서 웹 디자이너로 3년간 일하다가 미국 대학원에 합격한 남편을 따라 아무 준비도 없이 미국으로 떠났다.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익스큐즈미, 땡큐, 아임 소리 정도.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상태로 시작한 미국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매서웠다. 취업을 하려면 대학원에 진학해야 했는데 영어 성적이 한참 모자랐다. 대학원에 원서를 넣은 후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교수님들을 찾아다니며 눈도장을 찍었다. 그런 노력 덕분에 가장 가고 싶었던 디자인 명문대학원, 일리노이 공대 디자인 스쿨에 합격했다. 대학원을 마친 뒤 취업을 해야 했으나 면접에서 말을 제대로 못 해 지원하는 족족 떨어졌다. 어렵게 블랙엘이라는 컨설팅 회사에 합격해 2년 동안 대형 보험회사에 파견되어 일했지만 본인과 맞는 일이 아니었다. 더 즐겁게, 더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이직을 결심하고, 대학원 시절 한번 떨어진 경험이 있는 모토로라에 다시 한번 도전하여 합격했다. 모토로라에서 3년간 일하며 레이저 폰의 성공을 함께 했고, 이후 퀄컴에서 합류의 앱 개발 플랫폼과 증강현실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3년 한국으로 돌아와 삼성전자에서 세계 최초 원형 스마트워치 개발을 주도했다. 스마트워치는 해외 언론으로부터 애플보다 우아한 인터페이스라는 평가를 받았다. 웨어러블 산업을 이끌 글로벌 18인의 여성 리더, 웨어러블 게임 체인저 50선에 선정되었고, 이어 아이디어 디자인 브론즈 상을 받았다. 처음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되었다. 2018년 미국 실리콘 밸리의 구글 본사로 자리를 옮긴 이후 직장생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 속에서 열등감과 무기력증에 빠져 최악의 슬럼프를 겪었다.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날들이 1년 동안 이어졌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자신감을 회복하고, 팀 직원들에게 우울한 개구리라는 제목의 글을 전체 메일로 보냈다. 업무 능력이나 평가가 사람의 존재 가치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솔직한 마음을 담은 글이었다. 이 글은 회사 여러 그룹으로 빠르게 전파되었고, 수많은 사람이 자신도 개구리라며 커밍아웃을 했다. 다들 똑똑하고 잘나 보이던 그들도 남몰래 자신과 열심히 싸우고 있던 것이었다. 이 일을 통해 자신의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그 글에 순조롭게 적응하여 2020년에는 올해의 디자이너 상을 받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강연과 sns로 사람들과 활발히 소통하면서 지난 25년 동안의 실패담과 성공담을 나누었다. 특히 30살쯤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그녀 역시 그들과 비슷 과정을 겪어왔기에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응원과 위로가 되고 싶다 하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녀는 말한다. 손에 들고 있는 공을 여기저기 던져보라고 그래야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우린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준비가 잘 되어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준비가 필요한 일은 많지 않다고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망설임을 멈추고 방아쇠를 당길 용기라고 그렇게 서른 살을 나답게 살아내면 40살엔 더 단단해진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다고 말이다. 서른 살들이 그녀의 말에 힘을 얻는 것처럼 그녀 역시 밝고 희망찬 그들의 반응을 통해 큰 힘을 얻고 있다. 1등이 아닌 완주를 목표로 25년을 숨 가쁘게 달려온 그녀는 오늘도 영어 울렁증과 싸우며 앞으로 25년을 준비하고 있다.

 

생각이 너무 많은 30살에게



우울한 개구리가 되지 말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그래서 우린 우물 밖 넓은 세상을 동경하고 우물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괴롭히며 불안해한다. 나 역시 그랬다. 자라면서 우물 한 개구리가 되지 말자는 강박감이 늘 있었다. 스물일곱의 나는 한국에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떠났다. 넓은 세상으로 가보리라. 27쯤이 되면 나를 설명하는 포장지들이 생긴다. 어느 대학을 졸업했고,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고 등등 심지어 사는 동네에도 나를 나타내는 도구가 된다. 그런데 내 인생은 스물일곱의 리셋이 되었다. 나를 포장해 주던 것들이 미국에서는 효용 가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나를 화려하게 설명할 영어 실력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게 마주친 미국에서의 30살은 무너진 자존심을 부여잡고 오기로 버티는 시간이었다.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상태로 시작한 미국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짜고 매섭고 차가웠다.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초긴장 상태로 지내다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한국 드라마를 보거나 한국 친구를 만나 스트레스를 풀며 마음의 안정을 찾곤 했다. 시간이 흘러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자리도 잡고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고 있었지만, 나의 생활 반경은 내가 떠나온 한국보다 훨씬 더 좋았다. 우물 한 개구리가 되지 말자고 나왔건만 나는 넓은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 안에, 더 작은 우물 속에 살고 있었다. 바다에 멋지게 적응한 바다 개구리가 되지 못하는 내가 실망스럽고 한심했다. 그러다 주변의 작은 우물들을 보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이유로 넓은 바다로 나온 친구들도 있었고, 비슷한 고민과 생각으로 살아가는 친구들도 만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깨달음이 왔다. 우물 안 개구리가 문제가 아니라 우물 안에서 불행하게 사는 개구리가 문제였다. 우물이든 바다든 행복하게 살면 된다. 내가 아닌 바다 개구리가 되려고 하지 말고, 바다 개구리가 된 척하지 말고 그냥 나로 행복하게 살면 된다. 그러면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 그로 인해 불행해지지 않은다. 2018년 구글에 입사한 이후 감염 증후군을 지독히 앓으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전 세계 천제가 다 모여 있는 곳에서 나는 어림도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매일 들었다. 내 실력은 금방 들통날 테고, 그런 망신을 당하고 쫓겨날 거라는 두려움으로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을 버티다 마음 치유 상담을 받고, 한동안 하지 않던 글쓰기와 영어 공부를 다시 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2020년 구글의 하반기 평가가 시작될 때쯤 우린 모두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이야기와 함께 나의 우물 안 개구리 글을 그룹 전체의 이메일로 보냈다. 업무 능력이나 평가가 나라는 사람의 존재 가치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나누고 싶었다. 누군가 나처럼 자신을 괴롭히며 지독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내 이메일은 회사 여러 그룹으로 빠르게 전파되었고, 수많은 사람이 자신도 개구리라며 개구리 커밍아웃을 하는 게 아닌가? 다들 똑똑하고 잘나 보이던 그들도 나처럼 숨죽인 채 상처받으며 자신과 열심히 싸우는 중이었다.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고 위로를 받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각자의 스토리를 전하며 서로를 응원했다. 내 마음을 조금 열자 여기저기서 다른 이들도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마음을 열고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되었다. 나의 보잘것없는 그리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경험은 나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강연과 sns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나의 지난 25년 동안의 실패담과 성공담을 나누고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썼다. 이 책은 10번의 이직 경험과 글로벌 회사에서 일하며 얻은 삶의 노하우, 강연에서 주로 받은 질문 등을 정리해 넣었다. 우린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준비가 잘 되어 있다. 서른 살엔 정말 생각이 많아진다. 매일 실수하고 실망하는데 이게 내 길이 맞나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닐까 나 자신이 못나 보이고 초라한 마음이 든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세상은 점점 살기 어려워지고 사람들은 나만 빼고 레벨업 하는 것 같아 무섭다. 나도 그랬다. 돈도 없고 배경도 없이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가느라 지쳐 있다면 지금 당장 포기하고 싶고 돌아가고 싶다면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걱정에 잠이 오지 않는다면 10년 넘게 영어를 배웠는데도 여전히 영어 울렁증으로 글로벌 기회에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나의 글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미국에 온 지 10년이 지나서야 회사 일이 아닌 내 생각을 영어로 처음 썼다. 그것이 바로 우울한 개구리 이야기였다. 영어로 내 생각을 옮기는 데 10년이나 걸린 이유는 보잘것없는 나를 만나야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데 또 10년이 걸렸다. 나를 세상에 내보이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보다 잘할 수 있고 잘해야 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글은 구글 전체 그룹 이메일로 보내는 데 6개월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다. 그 또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세상 최고의 천재들한테 초급 영어로 쓰인 나의 글이 얼마나 보잘것없어 보일지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망설이는 나의 방아쇠를 당겨준 사람들이 있었다. 나의 영어 선생님, 상담 선생님, 그리고 구글의 친구들. 우린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준비가 잘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준비가 필요하지 않은 일이 많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망설이는 나를 밀어줄 친구와 방아쇠를 당길 용기라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내기 위해 원고를 여러 번 읽고 고쳐보는데도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좀 더 세련되고 깊이 있고 우아한 향이 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미련을 버리려고 한다. 늘 그랬듯이 지나간 일은 항상 모자란 듯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뒤를 돌아보는 시간은 짧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 보려고 한다. 나의 투박한 글을 보고 공감해 주고 위로를 받는다는 분들이 있다. 실제 도움을 받고 취업을 했다고 기쁜 소식을 알려주는 분들도 있다. 그걸로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 여기기로 했다.

 

오늘의 내가 완벽할 리 없다.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은 어제 나 역시 볼 품 없다. 일주일 전에 나도 그렇고 1년 전 나도 그렇다. 그런데 그 모자란 듯한 내가 하루를 살아내고 일주일을 살아내고 1년을 살아낸 다음 몇 년이 지나서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훌쩍 성장해 있다.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는 오늘이라고 오늘을 살지 않고 어제에 머물러 있지 않기를 바란다. 내일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내일을 포기하지도 않기를 바란다. 오늘을 살아야 한다. 그날이 그날 같고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아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 같지만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1년이 되고 10년이 되어 나를 만든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느려도 괜찮으니 오늘의 날을 열심히 찾아내길 바란다. 어느 날은 망한 듯하고 어느 날은 빗나간 듯하고 어느 날은 다 포기해 버리고 싶어 지더라도 나를 지켜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 30살을 나답게 살아내면 40살엔 더 단단해진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다. 내 손에 공을 들고 고민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 손에 들고 있는 공을 여기저기 던져보자. 그 공이 어딘가에 맞고 반드시 되돌아온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해보는 거다. 하고 싶은 일도 해보고 하기 싫은 일도 해보고 정말 못할 것 같은 일도 해보자. 그래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나를 포장한 껍데기를 벗고 다른 여러 가지 옷을 입어보자. 그래야 내가 어떤 모습이 어울리는 사람인지 알게 된다. 망설이는 여러분이 방아쇠를 당기는데 내 그리 힘을 보태면 좋겠다. 30살을 살아내는 여러분에게 이 책이 좋은 친구가 되면 좋겠다. 서른 살을 열심히 살아내는 모든 분들을 응원한다.

 

할 일은 많은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는 일은 늘 어렵다. 사람들과 관계를 다시 만들어야 하고 조직과 사연들을 알아야 하고 프로젝트를 파악하고 의미 있는 기여가 가능한 단계까지 가는데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도 6개월 정도면 감을 잡는데 구글은 입사 6개월이 지나가는데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세상 천재가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어쩌다 운이 좋아서 붙었을 뿐 여기에 있을 실력이 아니라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내 정체가 들통날까 봐 무서웠다. 종종 화장실에 숨어 있거나 주차장 차 안에서 한참을 앉아 있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구글은 꿈파리의 장이다. 우리가 무슨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이게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같은 매우 장대하지만 모호한 비전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기능 하나를 추가하려고 해도 온갖 철학적 해석과 의미가 필요하고 인간과 기계의 대화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수없이 다양한 해석과 접근으로 서로 다른 제안을 낸다. 다른 사람들의 꿈파리 쇼를 볼 때마다 나는 이곳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자괴감과 공포가 밀려왔다. 나를 괴롭히는 생각은 두 가지였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것 그런 내가 너무 싫다는 것 지금 상황이 문제라는 건 알겠는데 걱정은 하면서 그렇다고 뭔가를 하지도 않고 스트레스를 받으니 먹는 걸로 풀고 할 일은 미루고 인터넷만 하고 있고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내가 더 싫어지고 그러다가 시간에 쫓겨서 초치기로 일을 하고 그러면 당연히 퀄리티가 떨어지고 그래서 더 미치겠고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이런 상태가 1년 가까이 이어졌다. 어느 날 친구가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1년이면 충분히 헤맸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날 당장 상담 예약을 잡았다. 상담을 시작하고 한동안 나는 애써 최악은 아닌 듯 가장하며 밑바닥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너는 내가 아주 형편없는 사람은 아니고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자기 관리도 못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나 자신이 싫고 그러면 그럴수록 나를 학대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어떻게 하면 다시 최선을 다할 수 있는지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한참을 내 이야기를 듣던 상담사가 말했다. 당신 몸이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어서 그렇다. 당신이 완전히 지쳐서 몸이 기능을 유지하려고 당분간 고칼로리 음식을 찾는 것이다. 살아야 하니까 당신 마음도 쉴 곳을 찾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인터넷을 찾는 거다. 거기 가면 마음이 편해지고 위로받는 안정감을 느끼니까 마음도 살아야 하니까 그러니까 당신은 지금 최선을 다해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거다. 스스로에게 조금 관대해져도 괜찮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흘렀다. 나는 내가 무력감에 빠져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렇게 자신을 채찍질할 때 내 몸은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구나 내 마음도 어떻게든 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구나.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않는 지난 1년 동안 내 몸과 마음은 내가 돌보아 줄 때까지 그렇게 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구나. 나를 옭아매던 죄책감과 자악의 감정이 누그러지는 듯했다. 더 이상 나 자신을 방치도 학대도 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사가 숙제를 내주었다. 첫째, 그날 그날 해야 할 일을 기록하기 아주 작은 일이라도 그리고 그 일을 했을 때마다 칭찬하기. 둘째, 떠오르는 대로 노트에 적어서 머리에 있는 걸 밖으로 쏟아내기. 그날 이후 아주 작은 일도 빼놓지 않고 투두 리스트에 적었다. 할 일을 외면하면서 생기는 불안감이 리스트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반쯤 해결된 듯 느껴졌다. 미팅 잡기나 이메일 보내기 같은 단순한 일을 처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리스트에 적힌 일을 두 개 해내면 새로운 일이 3개쯤 더 생기기에 쓰였다. 그래도 진행 여부가 보이니 막연함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줄어들었다. 작은 일을 처리하면서 불안감과 스트레스의 근본적인 원인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느끼는 문화 충격과 업무 스트레스가 실리콘 밸리의 특성 때문인지, 구글이 나와 잘 안 맞아서인지 아니면 우리 팀의 문제인지 등등. 그러자 문제가 분명해지면서 팀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바로 팀을 옮길 수 있었다. 구글의 꿈파리 문화에 적응하려면 영어 공부가 필요했다. 그래서 영어 원서 낭독을 시작했다. 매일 한 시간씩 원서 낭독을 하는데 6개월 정도 지나면서 영어 실력 향상과 더불어 자신감이 회복돼 갔다. 나는 이제 어느 정도 능숙한 구글러가 되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도 쌓아가고 영향력을 미치는 인플루언서로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나와 일하고 싶다는 동료들도 생겼고 진로 상담을 요청하는 후배도 늘고 있다. 2020년 말에는 600명이 넘는 부서 디자인팀에서 올해의 디자이너 상을 받기도 했다. 구글에서 경험한 시련은 어둡고 길고 무서운 시간이었다. 갑각류는 성장을 위해 반드시 현재의 껍데기를 벗고 맨살인 시간을 지나야 한다고 한다. 그 맨살의 과정과 시간 없이는 더 큰 껍데기로 옮겨갈 수 없다는 것이다. 성장의 시간에는 반드시 성장통이 따르는 듯하다. 밤을 그릇이 커졌으니 이젠 열심히 채워볼 참이다. 나 혼자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우울한 개구리가 되지 말자고 떠나온 미국 유학길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생활 반경은 더 작은 우물 속 같았다. 한국 교회, 한국 드라마, 한국 음악, 한국 친구들 이러려면 왜 타국 땅에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과 좌절감이 나를 괴롭혔다. 회사에서 안 되는 영어로 유독 버벅거린 날, 멀리 한국에서 엄마 소식이 들려온 날 그런 날은 어김없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하는 생각에 시달렸다. 식물도 화분갈이를 하면 몸살을 앓는데 하물며 사회적 동물인 사람이 터전을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 짐 싸자. 그렇게 다독이고 내 팽개치고 다시 힘을 내는 세월을 10년쯤 보냈을 때 문득 깨닫게 되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어때서? 살면서 피해야 하는 일은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우물 안에서 불행하게 사는 거다. 우물 안에서 행복하게 살면 된다. 우물 안이 행복하지 않으면 나와서 행복하게 살면 된다. 개구리인 게 싫으면 개구리 안 하면 된다. 근데 사실 태어난 걸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빨리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정신 건강에도 좋고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다.

 

행복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개구리가 어때서? 음울한 개구리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작고 고립된 세상에 살면서 그게 세상 전부인 줄 아는 사람을 뜻하는 한국 속담입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면서 이런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우울한 개구리가 되지 마라 큰 꿈을 품고 가능한 모든 것에 도전해 봐라. 이런 말에 늘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오기로 결심했습니다. 우울한 개구리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넓은 바다를 탐험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바다는 정말 넓고 짜고 파도로 넘실거렸습니다. 바다로 나온 이후 내 삶은 매 순간이 생존을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깊은 바다에서 헤엄치는 법을 배워야 했고 먹이를 찾는 법도 바다거북과 대화하는 법도 물고기들과 친구가 되는 법도 익혀야 했습니다.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나는 고래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발버둥 치다가 쉴 수 있는 작은 섬을 발견했습니다. 정말 휴식이 필요했습니다. 섬에서의 삶은 편안했습니다. 마실 수 있는 맑은 물도 있고 편하게 대화할 개구리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바다로 나가면 여전히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했지만 그래도 바다를 벗어나 쉴 수 있는 섬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외로워졌고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가 꿈꾸던 바다에서의 삶이 아니었습니다. 내 고향 우울한 친구들은 나를 대단한 개구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바다거북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워했습니다. 바다에 사는 나를 부러워했습니다. 그들에게 내가 사는 섬은 너무 멀고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내가 누구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 헷갈렸습니다. 우울한 개구리가 되기 싫어 그곳을 떠났는데 바다로 둘러싸인 더 작은 섬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나 자신에게 화가 났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바뀐 건 아무것도 없는 듯했습니다. 몇 년 후에야 다른 섬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것도 꽤 많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습니다. 이웃한 섬에 방문해 친구도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문득 가장 중요한 사실을, 모든 것의 핵심이 되는 것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개구리라는 사실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에만, 우물 안인지 바다인지 섬인지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그리고 개구리가 아닌 바다 개구리 같은 새로운 무엇이 되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런 건 세상에 없습니다. 나는 개구리로 태어났고 그래서 개구리로 산다는 게 잘못된 일은 아닙니다. 그때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았고 내가 얼마나 영리하고 용감하고 아름다운 개구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원할 때마다 바다에서 헤엄칠 수 있고 헤엄칠 기분이 아니면 배를 탈 수도 있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바다 친구들에게 말을 걸 수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을 전부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았습니다. 바다에서 산다는 것은 여전히 큰 모험입니다. 바다에는 나 같은 작은 개구리를 무시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들도 그들만의 우물에서 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사는 섬은 점점 더 단단해지고 넓어지고 높아지고 있습니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지를 알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내 이름은 김은주입니다. 행복한 개구리예요. 구글의 업적 평가 시스템은 사람 피 말리기로 유명하다. 일단 화려한 글솜씨로 자기 평가서를 써내고 6명에서 7명의 동료 평가자를 지목한다. 승진 대상자라면 승진의 당위성을 증명하기 위해 엄청난 공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 뒤에 이어지는 절차는 더욱 산 너머 산이다. 매니 저들끼리 모여서 조정이라는 걸 하는데 왜 a가 이 점수를 받아야 하는지 왜 b는 안 되는지 치열한 신경전과 공방전이 펼쳐진다. 거의 두 달 넘게 이어지는 이 과정은 모두에게 스트레스지만 특히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훈련되어 있지 않은 외국인에게는 정말 고욕스러운 여정이다. 내성적인 기질이거나 성과를 수취하기 어려운 직군에 속한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시스템이다. 감수성 높은 디자이너는 이 과정을 지나고 나면 위축되고 주눅 들고 자존심에 상처가 난다. 2020년 평가 프로세스가 시작된다는 이메일을 받고 2019년에 처음으로 업적 평가를 겪으면서 멘붕을 겪은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이 힘든 과정에서 우리는 성과를 내기 위한 공장의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점, 평가서에는 다 담기지 못하는 개개인의 가치를 잊지 말자는 점, 평가가 나를 대변하는 게 아니라는 메시지와 함께 우물 한 개구리라는 제목의 글을 구글 전체 디자인 그룹에 공유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개구리들의 커밍아웃이 이어졌다. 이메일은 더 많은 그룹에 공유가 되었고 수많은 공감의 이메일이 오갔다. 개인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이메일로 보내온 사람들도 있었고, 일대일 면담을 요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그저 나의 지나온 고군분투를 밝히며 개구린 걸로 충분히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했을 뿐인데 여기저기서 개구리 커밍아웃을 보게 될 줄이야. 그렇다 혼자가 아니다. 나만 아등바등하는 게 아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로가 된다. 모두 함께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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