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웃어주시고 고개 끄덕여주시고 박수 쳐주시고 그 마음에 답하기 위해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그러다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질주했구나. 시속 100킬로미터로 내달려 왔구나. 문득문득 공허했고 외로웠고 아팠습니다. 생각했습니다. 나를 다시 살게 해야겠다 찾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나는 언제 행복하지?
내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는 장소, 사람, 순간을 찾아 나섰습니다. 한 번쯤 해보고 싶다고 늘 마음속으로만 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보았습니다. 여러분도 이제 제대로 숨을 쉬고 사세요. 더 이상 숨을 참고 살지 마세요.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한 삶을 사세요. 이제 누군가 제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대답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여러분 이제 좀 행복하셔도 괜찮습니다. 행복을 너무 낯설어하지 마세요. 인생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마음이 깨지지 않기 위해 한창 전국을 돌며 강연을 하러 다닐 때 여주에서 옹기를 파는 가게를 만났습니다. 오랜 세월을 지나온 옹기 수백 개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옹기들을 보는 순간 마치 운명처럼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바쁘기만 했던 나의 마음 안에서 시계 초침 소리가 째깍째깍 느려졌습니다. 허기진 마음이 배부르게 차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한참을 바라보다 양팔 한가득 벌려 안아야 겨우 품에 담을 수 있는 커다랗고 무거운 온기 하나를 골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무언가 담을 것이 있다거나 필요해서 산 것은 아니었습니다. 커다란 온기를 제 방 안에 가만히 두었습니다. 며칠을 그저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 옹기 안에 물을 채우고 금붕어 몇 마리를 구해 넣어두었습니다. 옛 일곱 마리 금붕어는 옹기 안에서 잘 살았습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늦은 밤일 때가 허다했고 지방에 다녀오는 날이면 새벽 12시에 귀가하는 것은 예삿일이었습니다. 피곤한 몸과 마음을 끌고 집에 돌아와 저는 꼭 그 옹기를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저 좋았습니다. 바라보는 것이 그것이 저에겐 쉼이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방문을 열어 묵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옹기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제 하루 일과의 마무리였습니다. 이렇게 마음속에 옹기라는 물건이 들어온 후 제주에서 화산토로 직접 옹기를 구워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흙을 푸고 흙 속에 이물질을 제거하고 그 흙으로 옹기를 굽는 노동을 직접 해보았습니다. 흙을 반죽하고 물레를 돌려 모양을 만들고 가마에 넣을 장작을 패는 것까지 모든 과정을 겪어보며 우리 인간의 삶과 온기가 참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온기를 가마에 넣기 전에 말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바로 가마에 넣지 않고 일주일 정도 잘 말려서 넣습니다. 그런데 겉은 잘 마르는데 속은 잘 마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따뜻한 전구를 하나 온기 안에 넣어둡니다. 빛의 따뜻함으로 안쪽도 골고루 말리는 것이죠. 그래야 비로소 섭씨 천도가 넘는 뜨거운 가마 안에 넣고 구울 수 있게 됩니다. 습기를 머금고 있는 온기를 바로 가마에 넣으면 강한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깨져버리기 때문입니다. 또는 금이 가거나 아예 녹아버립니다. 우리 사는 일도 그렇습니다. 가마 속 뜨거운 불꽃처럼 때때로 삶이 나를 태워 없애버릴 것만 같은 시기가 있습니다. 고통, 고난, 훈련 실현과 같은 어려운 시기가 찾아옵니다. 힘들게 공부하고 힘들게 돈을 벌고 힘들게 관계를 유지하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찾아오는 삶의 고된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오히려 단단한 옹기가 될 수 있습니다. 고난은 인간을 단련시켜주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우리 마음에 상처, 열등감, 비뚤어진 마음, 우울, 건강하지 못한 자존심 등 온갖 습한 마음들이 자리 잡고 있으면 강한 불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깨지고 찢기고 터지고 맙니다. 습한 마음을 볕 좋은 양지에서 잘 말리지 않으면 이전에는 견딜 수 있었던 똑같은 온도의 불꽃 안에서도 쉽게 깨질 수 있습니다. 옹기가 깨지는 또 다른 이유는 당연하게도 불이 너무 센 경우입니다. 옹기가 견딜 수 있는 온도를 넘어설 때입니다. 밖에서 가마 안을 들여다보면 온도를 체크할 수 있는 표식이 있습니다. 다섯 개 정도의 작은 진흙을 통에 꽂아 놓고 진흙이 하나씩 쓰러지면 가마가 몇 도인지 체크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내가 어느 선까지 버틸 수 있는지, 어느 선까지 괜찮은지 내 한계선을 알아야 합니다. 일을 하고 목표를 세워 도전을 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스트레스와 압박을 받는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안전한 상태와 위험한 상태를 감지할 수 있는 체크 포인트를 두고 중간중간 나의 한계선을 살펴야 합니다. 그것을 모른 척 방치하면 어느 순간 나 자신이 깨지거나 관계가 붕괴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옹기가 깨지는 또 다른 상황이 있습니다. 천도가 넘는 온도에서 구워진 옹기를 가마에서 서둘러 꺼내면 외부와의 급격한 온도 차이로 인해 옹기가 깨지고 맙니다. 가만히 불이 꺼졌다 해도 700도, 300도, 100도, 50도 이렇게 차차 온도가 충분히 떨어질 때까지 가만히 옹기를 두고 23일 정도 기다립니다. 우리도 그런 실수를 하곤 합니다. 너무 뜨거워 견디기 힘든 상황이 찾아왔을 때 얼른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합니다. 슬픔, 절망, 어려움, 고통 속에서 빨리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준비한 시험에서 자꾸 떨어지거나 버려놓은 일이 잘 되지 않거나, 관계 속에서 생체기를 입거나 직장 안에서 위기가 찾아오거나 그럴 때 우리는 서서히 회복하려고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공부를 아예 포기해버리거나, 잘 나가는 다른 업종으로 갑자기 노선을 변경하거나, 사람에게 입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해야 한다며 성급하게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기에 돌입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과연 상황이 나아질까요? 당장 나아지고 치유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조금 더 힘겨운 상황이 지속되더라도 스스로를 기다려주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열기가 휘몰아치는 가마를 박차고 나오기 전에 잠시 기다려보세요. 나를 둘러싼 열기가 차차 사그라들기를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더 튼튼하고 견고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흙에 축축한 습기가 많을 때, 가마 속 온도가 너무 높을 때, 갑자기 뜨거운 옹기를 온도 차가 많이 나는 세상 밖으로 꺼낼 때, 정성껏 시간을 들여 만든 결과물이 깨져버립니다. 그간의 노력이 모두 없던 일이 되는 것 같아 허무해집니다. 하지만 깨진 온기가 그저 쓸모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깨진 온기를 곱게 가루로 만들어 다시 흙에 섞으면 더 찰진 흙이 됩니다. 더 단단한 옹기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되는 것이죠. 살면서 한 번도 깨어지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한 번도 찢어지지 않은 마음이 과연 있을까요? 강한 열기에 깨지고 찢어져 스스로가 보잘것없이 느껴지고 모든 과정이 덧없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때의 몸과 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는 또다시 흙을 골라 정성껏 옹기를 빚어 뜨거운 가마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좀 더 괜찮은 옹기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은 점점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지키는 것이 당신을 지켜줄 것입니다.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재방송을 보고 있었습니다. 전국 곳곳을 다니며 시민들을 인터뷰하는 방송이었습니다. 시장, 공원, 식당, 학교, 길거리 등 등 예상치 못한 뜻밖의 만남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절로 유쾌해지고 감동도 받고 했습니다. 그날 방송에 나온 지역은 문래동이었습니다. 과거 문래동은 철공소 밀집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철강 산업이 침체되고 중국산 부품들이 밀려들어오면서 문을 닫는 철공소가 늘었는데, 2천 년대 들어 비어 있는 철공소에 젊은 예술인들이 들어오며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고 네 그래서 그런지 20대 후반의 젊은 청년을 인터뷰한 내용이었어요. 기계 부품이나 거친 고철을 미세하게 깎아서 매끄럽고 광택이 나게 하는 공장의 젊은 사장이었습니다. 어떻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묻는 질문에 청년이 한 대답이 제 가슴을 턱 쳤습니다. 아버지가 같은 일을 하셨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작업에 집중하던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일하며 사는 아버지의 모습에 자신도 이 일을 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버지에게 일을 배우다 이제는 어엿한 사장이 된 것이죠. 저는 청년을 보고 그동안 잊고 있던 중요한 가치 한 가지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새것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롭게 하는 것. 청년은 빠르게 성공하고자 하는 욕심 없이 매일매일 철을 깎으며 실력을 쌓는 데 집중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발견했을 때의 첫 마음을 기억하며 새로운 일을 찾는 데 에너지를 쏟기보다 기존의 일을 새롭게 하는 방법을 찾는 데 집중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만 했는지도 모릅니다. 더 심오해 보이는 것, 그동안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것을 찾으려 헤맸습니다. 하지만 이미 하늘 아래에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새것을 찾는 것이 아네라 새롭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것, 일상을 낯설게 보고 그 안에서 본질을 발견하는 것, 이미 익숙하고 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영원한 삶의 위치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서 했고요. 항상 생각하는 게 오늘 하루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감사해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던 청년의 목소리는 어떤 가식적인 힘이 들어가지 않은, 마치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렀습니다. 그의 말이 햇빛이 되어 저를 비춰주었습니다. 그리고 제 부끄러운 마음이 보였었습니다. 저는 강연을 하다 유튜브도 하게 됐고, 그러다 sns에서 좋은 농수산물을 소개하는 공동 구매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제 이름을 걸고 단독으로 하는 일들을 시작하면서 마음 가짐이 달라졌습니다. 내 삶을 투자하고 내 돈을 투자하자 책임감과 두려움이 제게 같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강연을 하던 사람이 물건을 판다고 할 때 사람들이 비난하고 등을 돌리지 않을까 드린 시간과 노력에 비해 욕만 먹고 실패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에 머리는 복잡하고 마음은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청년의 말이 제게 경종을 울려주었던 것이죠. 네가 두려운 이유는 좋아서 이 일을 한다는 생각 외에 이미 네 머릿속에 숫자가 앞서 있기 때문이야. 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일로 성공할 수 있을까? 그 마음이 앞섰기 때문에 니 마음의 평안이 사라진 거야. 평안히 사라진 사람에게 어떻게 성과가 찾아오겠니? 제 안에서 들려오는 깨달음이 저를 부끄럽게 했고 동시에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려주었습니다. 성공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 마음에 찾아오는 평안입니다. 숫자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가 1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입니다. 청년이 첫 마음을 지켜 새로움을 지켜냈던 것처럼 저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머릿속 계산과 싸우려 하지 않고 일을 했을 때의 재미, 마음의 평안에 집중하려 합니다. 당신이 지키는 것이 결국엔 당신을 지켜줄 것입니다. 책 한 권을 대하는 마음도 나중에 시간이 나면 읽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하루에 30분씩은 책을 읽어야지라고 다짐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기도하는 사람이 있고 기도 시간을 지켜서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쁘다고 운동을 뒤로 미뤄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운동을 하루 스케줄에서 최우선으로 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켜낸 것들, 만일 당신이 책을 읽는 시간, 기도하는 시간, 운동하는 시간을 지켜냈다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훗날 그 시간들이 당신 삶을 지켜줄 것입니다. 운동 시간을 지키면 운동이 나를 지켜주고 건강검진받는 시기를 지키면 그 건강검진이 나의 생명을 지켜줄 확률이 높습니다. 내가 지킨 친구들이 어느 시기가 오면 나를 지켜줄 것이고 내가 지킨 가족들이 나를 지켜줄 것입니다. 우리가 지켜온 삶의 가치관, 삶의 자세가 우리를 평생토록 지켜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같이 있다고 느끼는 것을 지켜나가는 삶을 사세요. 꽤 멋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경험이 있나요? 미치도록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먼저 떠난 사람을 생각하면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하는 죄책감에 시달려 본 적 있나요? 어쩌면 제 이야기가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음향 공학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요. 대화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카페에 가면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사람들은 음악 소리를 배경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음악 소리보다 더 크게 말한다고 합니다. 한 테이블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옆 테이블에 전달되면 옆 테이블은 그 소리보다 더 크게 말하게 된다고 해요. 그 소리가 또 다른 테이블로 전해지고 전해지면서 카페의 전체적인 소리가 커진다고 합니다. 이처럼 소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합니다. 우리의 말하기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의 말하기가 가진 힘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든 꺼내기 힘든 이야기든 우리 안에 있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 분명히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슬픔 서러움 그리움 두려움 감정들을 제때 잘 표현하지 않으면 고스란히 몸에 스며듭니다. 슬픔이 나를 장식하고 그리움이 내가 됩니다. 한 식당에서 우연히 옆 테이블에 앉은 여성분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일부러 들은 것은 아니고 한껏 상기된 목소리가 테이블 너머로 들려왔습니다. 오늘의 약속을 위해서 다들 신경을 쓰고 나온 것 같았어요. 내 머리 어때? 나 좀 살찐 것 같지? 같은 소소한 이야기들을 쉬지 않고 나누더군요. 맛있는 걸 먹으며 서로를 칭찬해 주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웃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상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과정이 몸이 헐거나 굶으면 붙이는 고약처럼 느껴졌습니다. 종기에 붙여놓으면 고름을 빼주고 상처에 소독까지 해주는 고약처럼 그들의 대화는 내면의 상처를 밖으로 빼내주고 있었습니다. 직장에서 힘들고 가족 문제로 힘들고 그래서 너무 죽고 싶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그럼 상대방은 이렇게 반응해 줍니다. '그런 얘기 들으니까 내가 더 속상하다 넌 얼마나 힘이 들겠니 실은 나도 요즘 비슷한 일들로 힘들어서 너무 공감이 된다.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게 울다가 먹다가 또 웃다가 서로의 속마음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대화에 근본적인 해결책이나 조언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서로의 힘든 점을 말하고 들어준다는 사실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날의 대화로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고 있었습니다.
기쁜 마음이든 슬픈 마음이든 타인과 공유하는 경험을 자주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슬픈 마음은 힘이 셉니다. 혼자 감정들을 견디고 버티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꽤 많이 존재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최근 저희 아버지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습니다. 밤에 화장실에 가시다 넘어졌는데 갈비뼈에 실금이 갔습니다. 금이 간 상태로 폐에 농이 찼고 갈비뼈에 실금 때문에 기침을 제대로 못하니 가래를 뱉어내지도 못해 상황이 나빠졌습니다. 부랴부랴 병원에 입원했지만 아무래도 고령이기도 하시니 마지막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별 중 가장 충격적이고 헤어 나오기 힘든 것은 가족과의 이별일 것입니다. 많은 경우 헤어지면 갑작스럽게 찾아오기 때문에 극심한 고통과 슬픔에 빠져 현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냈다면 어느 정도의 슬픔은 안고 살아가겠죠. 슬픈 마음이 들 때는 온전히 슬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너무 빨리 괜찮아지려고 얼른 회복해야 한다고 조급해하지 않기로요. 하지만 계속 슬픔 속에 가라앉아 있는 건 우리를 먼저 떠난 이들이 결코 우리에게 바라는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은 죽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람은 누군가의 기억에서 사라지면 그때 죽은 것이다. 그러니 살아있지만 죽은 사람이 있고, 죽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살아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너무도 식상한 말이지만 우리를 떠난 이들이 바라는 건 적정한 시기에 우리가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그리워할 힘을 갖는 것입니다. 완전히 방전되어 버리면 그리워할 힘도 추억할 힘도 사라집니다. 너무 힘들면 그 기억과 마주할 자신이 없어져 버립니다. 내 마음과 정신에 힘이 있어야 그 기억을 직면할 수 있고, 먼저 떠난 소중한 이들을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둘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또는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먼저 떠나보냈다면 지금 우리에게 힘들어하고 죽을 것 같은 이 시간이 있는 것이 적절합니다. 너무 빨리 이겨내려고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슬픔은 우리가 사랑했던 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같습니다. 다만 이 힘듦을 지탱할 수 있는 물 한 모금을 중간중간 축이면서 슬퍼해야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슬퍼한다면 우리의 몸에 한계가 와 견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나 슬프더라도 오늘 동네 한 바퀴는 산책 삼아 돌아야지.'나 '하루 종일 울더라도 점심밥은 먹어야지.' 애도하고 슬퍼하되 너무 참으려 하지 말고 중간중간 한 모금에 물을 마시려고 하십시오. 깊은 슬픔 속에 있다가 조금씩 마음의 힘이 생기면 상실의 경험과 감정을 글이나 대화로 공유해 보는 것도 큰 치유가 되어 줄 것입니다. 일기를 쓰거나 sns에 글을 올리거나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조금씩 털어놓아 보세요. 나와 비슷한 경험을 겪은 사람들,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하나둘 다가와 그들의 사연을 들려줄 것입니다. 어떤 해결책도 조언도 와닿지 않을 때 그저 서로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것만으로 우리는 위로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슬픔을 이겨내는 것보다 슬픔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지금의 힘든 감정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힘든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 그리움을 품기 위해, 소중한 일을 잘 기억하기 위해 우리에게 힘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삶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사랑한 사람들을 더 선명하게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삶을 잘 가꿔 나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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