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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기분 따라 행동하다 손해보는 당신을 위한 심리수업

by J____H 2023.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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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불평이 하루를 망친다



넌 왜 이렇게 불만이 많아?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서 이런 질문을 들었을 때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내가 불만이 많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너무 미안했고 어디론가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버스에 사람이 너무 많아 아 짜증 나 왜 이렇게 더워? 아 짜증 나. 그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친구에게 짜증을 부렸다. 모든 일에 불만이 많았고 불평거리가 떠오를 때마다 짜증이 났다. 그야말로 짜증 난다는 말이 입에 붙어 있던 시절이었다. 슬플 때도 짜증 난다고 말하고 화가 났을 때도 짜증 난다고 말했다. 온 세상이 나를 짜증 나게 만들기 위해 돌아가는 것 같았다. 무엇이 내 마음에 그렇게 안 들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거슬릴 일도 아닌데 습관적으로 불평을 했던 것 같다. 이런 습관적인 불평은 내 하루를 망치고 내 관계를 망치며 결국 나를 망쳤다. 엉망인 하루하루가 모여 결국에 나는 불만이 많은 친구가 되어 있었다. 모두 속으로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사사건건 불평을 한다고 해서 자신에게 이득이 될 일은 전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자신이 지금 얼마만큼 불만족스러운지를 밖으로 표현해 봐야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나아지기는커녕 주변의 분위기를 더 나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의 기분마저 망가뜨리고 만다. 그러나 짜증스러운 불평을 쉽게 멈출 수도 없다. 사실 불평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불평의 대상인 친구나 가족, 상사, 환경 등은 대체로 자기 바깥에 있는 것들이다. 그들을 원망하는 마음의 근원을 따라가 보면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어처구니없는 믿음 때문에 나는 나의 진심을 참지 못하고 말로 내뱉고 마는 것이다. 불평하는 습관이 들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 대신 다른 사람을 부정하고 비꼬게 된다.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고 자신의 행위를 치켜세우면서 우월감과 쾌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런 쾌감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아무런 이득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짜증을 내며 불만을 표출하면 답답했던 기분이라도 나아질까? 그것도 아니다. 툴툴대는 내가 싫어져서 기분은 더 최악으로 치닫는다. 설상가상으로 주변 사람들마저 점점 나에게 질리는 게 느껴진다. 나의 못난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불평을 멈출 수 있을까? 불평하는 순간, 순간을 인식해라. 미국의 유명한 목사인 윌보에는 불평 없이 살아보기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21일간 보라색 밴드를 한쪽 손목에 차고 다니다가 스스로 불평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때마다 밴드를 다른 팔목에 옮겨 차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캠페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캠페인을 환영하며 기꺼이 동참했고, 불평하는 습관을 고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나에게 불평하는 습관이 있는지를 깨닫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친구에게 지적을 받고 그때부터 말과 행동을 의식하기 시작했듯이, 자신에게 나쁜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고칠 수 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불평하길 포기하라. 나를 불평하게 만드는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어머니의 집착과 잔소리가 불만이라면 어머니와의 관계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매번 짜증스러운 댓글로 응하지 말고 문제를 발견하고 분석하고 해결해라. 그러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또다시 구시렁거리고 있다면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를 포기하라. 날씨가 춥고, 덥고, 같은 일 하나하나에 불만을 가지기 시작하면 스스로 멈출 수 없다. 불평은 사람의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모하는 무익한 행위다. 불평을 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불평하는 것을 멈춰라.

 

내 감정은 내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 이런 장면을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출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동료들이 하나둘씩 사무실로 들어온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모두들 애써 즐거운 하루를 시작하려는 순간,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한 사람의 낯빛이 어둡다. 어디서 돈이라도 떼인 사람처럼 나타나서 인사도 안 받고는 자기 자리에 앉아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화기애애했던 사무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가워지고 먹구름이 드리운 것처럼 어두워진다. 밝게 인사하던 동료들의 기분도 가라앉아 어색하게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한 사람이 밖으로 표현하는 기분의 에너지는 생각보다 강력해서 사무실 전체 분위기를 좌우하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서로의 감정은 교류되어 일상의 모든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감정 전염이다. 희로애락을 포함한 모든 감정은 아주 짧은 시간에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전염된다. 이 전염 속도는 생각보다 빨라서 때로는 당사자가 알아차리지 못할 때도 있다. 특히 남의 감정에 쉽게 전염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중심이 단단하게 서 있지 않으면 남에게 금방 중심을 빼앗기고 만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로부터 안 좋은 감정을 얻어왔음에도 스스로를 탓하고 자기도 모르게 지쳐버린다. 심지어는 감정 기복이 심하다며 자신을 깎아내린다. 남에게서 가장 경계해야 할 감정은 우울감이다. 만약 상대방이 크게 분노한다면 우리는 이를 방어할 수 있다. 분노는 자극적인 에너지라서 자신에게 안 좋으리라는 것을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다. 심하게 분노하는 일을 비판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울은 다르다. 우울한 사람의 에너지는 아주 천천히 전염된다. 무기력 또한 경계해야 할 타인의 감정이다. 한 팀원이 잘 안 될 것 같아 그냥 대충 하자 등의 말을 자주 하면 팀 전체가 서서히 사기를 잃는다. 남의 기분에 영향받지 않기 위해서는 기분의 출처를 정확히 해야 한다. 타인에게 전염된 기분이라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쳐내는 연습을 해보자. 남의 감정까지 내가 감당해야 할 의무는 없다. 지금 나의 기분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만 깨달아도 그 무게가 훨씬 가벼워져서 내 안에서 흘려보내는 일이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만 보면 감정 전염이 부정적인 영향만 미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감정 전염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 밝고 즐거운 기분이 넘친다면 주변 사람에게 좋은 기분을 전달할 수 있다. 유쾌한 감정들로 기분이 좋다면 흘려보내지 말고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두자. 언젠가 자신의 좋은 기운으로 다른 사람의 기분까지 끌어올려 줄 수 있을 것이다. 타인에게 전염된 기분은 과감하게 쳐내버리자.

 

재수 없는 날에 대처하는 법



오늘따라 일이 잘 안 풀리네. 그런 날이 있다. 아침에 버스를 놓치는 흔한 일에서 시작된 오늘의 불운이 하루 종일 나를 쫓아다니는 것만 같은 날. 오후에는 상사한테 괜한 짜증을 듣고, 중요한 메일에 치명적인 오타를 내는 것으로 부르는 정점을 찍는다. 이런 날은 우연히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주목하게 되지 않는다. 이미 재수 없는 날이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누군가의 선의도 쉽게 믿지 못한다. 이런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이 눈에 거슬리면 그 사람이 뭘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에게 살갑게 다가오면 가식을 부린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무뚝뚝하게 굴면 괜히 도도한 척하는 것 같다. 이미 그 사람에 대해 일방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웬만해서는 그 편견을 깨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위의 상황을 나타내는 심리학적 근거가 바로 확증 편향이다. 자신의 신념과 결정에 부합하는 정보에만 지나치게 주목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어떤 주관적인 관점을 갖게 되면, 이 관점은 머릿속에서 쉽게 떠나지 않고 계속 남아있게 된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관점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보를 찾는 경향이 강해진다. 반대로 자신의 관점과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해 버린다. 판단이 하나씩 입증될 때마다 '거 봐, 내 생각이 맞잖아'라고 생각하며 편견을 강화한다. 예를 들어 내가 짝사랑하던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확신이다. 이 확신을 입증하기 위해 나는 관점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보를 모으기 시작한다. 상대가 나와 같은 강의를 듣고 같은 마트를 다닌다는 정보를 근거로 삼아 이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우연히 반복되는 게 말이 돼? 그 사람이 나를 보려고 일부러 그러는 게 틀림없어.'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그 강의를 선택한 학생은 한둘이 아니고 상대도 같은 수업을 듣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마트에서 마주치는 것은 단순히 두 사람의 생활 반경이 겹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정보가 정말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사람은 각자의 관점을 갖기에 확증 편향에 빠지기 쉽다. 흔히들 자신의 확증이 터무니없이 꾸며낸 것이 아니고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근거란 극히 일부일 뿐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보는 것은 지극히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전체의 단면만을 본 뒤 잘못된 결론을 도출하고 거기에 몰입하면 주변의 반대 의견을 무시한 채 고집에 빠진다. 어떻게 하면 확증 편향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딱 하나, 그것이 거짓임을 증명하면 된다. 거짓을 증명하는 가장 전형적인 방법은 시행착오다. 한 가지 가설을 세운 후 그에 부합하지 않는 예를 계속해서 찾아내 가설을 수정하는 방법인데, 결국 최초에 세운 가설이 완전히 뒤집혀 버린다. 앞에서 얘기한 재수 없는 날을 예로 들자면, 그러한 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스스로 세운 가설이다. 그다음 해야 할 일은 늘 하던 대로 재수 없는 에피소드를 찾아내 그날이 확실히 재수 없는 날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행운의 요소를 찾아내 잘못된 가설을 뒤집어야 한다. 지각은 했지만 밤새워 작성한 보고서가 좋은 피드백을 받았다거나, 갑자기 회사 컴퓨터가 다운됐는데 노트북을 가져온 덕에 무사히 일할 수 있었다는 등의 좋은 정보들을 모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운이 안 좋은 날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일상을 보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은 것은 당연하다. 확증 편향의 그림자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 상황을 정확히 읽는 분별력이 생기고, 사람을 제대로 보는 안목을 가지게 될 것이다. 섣부르게 평가하고 재단하면 내 기분만 망가진다.

 

감정을 계속 억누르다 보면 생기는 일



에이치는 어린 시절에 언제나 완벽해 보이고 흠잡을 데 없는 다른 집 아이를 담고 싶었다. 그 친구처럼 철든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서 고집을 꺾고 성질을 누르며 부모님의 관심을 끌곤 했다. 그렇게 조금씩 다른 집 아이가 되어 갔다. 그 결과 거짓말과 속임수를 자연스럽게 습득했다.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정을 억누르다 보니 죄책감에 사로잡혔고, 결국 자기의 진짜 모습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감정 억제에 따른 후유증이다. 감정 억제는 단지 의식적으로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통제할 뿐, 우리가 어디서나 환영받는 사람이 되는데 도움 되지는 않는다. 당신과 관점이 다른 직장 동료가 의견을 고집한다고 하자. 원래 성질대로라면 목소리를 높이든 화를 내든 해서 상대방을 최대한 설득했을 테지만, 결국에는 당신의 생각을 숨기는 선택을 한다. 나만 참으면 모든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동료는 주장을 더 내세우며 기고만장해질 뿐이고, 당신은 그냥 상황을 개선하기를 포기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점차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잃어버리게 된다. 감정은 결코 억누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감정이나 생각은 억제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강해지고, 억제가 안 되면 더 강력한 억제가 필요해진다. 이런 악순환은 당연히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 어린아이가 오랫동안 감정을 억압하고 해소하지 못하면 밥을 거부하거나 사람과 만나기를 피한다. 또 다 큰 것처럼 행동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른들의 기분을 맞추고 눈치를 살핀다. 아주 작은 칭찬을 받기 위해 어린아이의 순수한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성인의 경우는 어떨까? 감정 억제가 오래되면 순간적으로 감정이 폭발하게 된다. 쉽게 초조해지거나 싫증을 내고 고집을 부려서 사회생활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남에게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어 기쁨이나 희열 같은 감정도 밝게 표현하지 못하게 된다. 인생이 재미없어지고 몸이 건조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감정을 억누르는 습관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먼저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살펴야 한다.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은 감정이 생길 것 같은 조짐이 보이면 재빨리 무의식에 넣어버린다. 감정에 대한 면역력이 전혀 생기지 않아서 감정의 무게를 버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자기의 느낌을 스쳐 보내지 말고 직시할 용기를 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조차 정확히 모른다. 누군가가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이 많다. '잘 모르겠어. 그냥 기분이 별로야. 우울한 것 같아.' 뭐 뭐 한 것 같다고 에둘러 말하지 말고 나는 화가 났다고 분명하게 말하는 연습을 하자. 꾸준히 운동해야 근력이 생기듯이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도 조금씩 꾸준히 해봐야 는다. 그러다 보면 느낌을 정확히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이 자신에게 전혀 해가 되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오히려 억눌린 감정이 폭발할 듯한 위험이 표현을 제대로 못해서 생기는 답답함을 느끼지 않아 훨씬 건강한 마음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인생은 자유로워 보여도 언제나 족쇠를 달고 추는 춤과 같다. 우리가 무언가에서 벗어나려고 할수록 스스로 손발을 묶는 셈이 된다. 내 크고 작은 마음들에 관심을 가져주자.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내 안에 있다. 감정이나 생각은 억제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강해지고, 억제가 안 되면 더 강력한 억제가 필요해진다. 즐겁고 행복한 척 연기하고 있는 당신에게 가끔씩 사람들과의 모든 만남이 혐오스럽게 느껴진다.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자꾸만 세상이 싫어진다. 나 자신조차 낯설게 느껴지고, 세상의 높은 담벼락에 가로막혀 있는 것 같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던 희극인 찰리 채플린이 한 말이다.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에는 가면성 우울증 환자의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형적인 우울증 환자와 달리 가면성 우울증 환자는 겉으로는 매우 밝고 긍정적이며 어두운 그늘을 절대 보이지 않는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은 편이고, 유머러스하고 정이 많으며, 남을 즐겁게 해주는 제주도 있다. 가면성 우울증을 겪는 사람은 대부분 위장의 달인이 되었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들조차도 이상한 점을 눈치채기가 쉽지 않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이기를 꺼리는데, 나는 밝고 재밌는 사람이며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일종의 캐릭터 설정을 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들어낸 캐릭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사람 앞에서 즐겁지 않은 자신을 드러내길 거부하고 습관적으로 즐거운 척 연기를 한다. 그래서 가끔은 그들도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한다. 그들의 웃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갑옷이지만 동시에 자신을 겨냥하는 무기다. 이미 웃는데 지치고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매번 같은 방법을 선택한다. '우울하다는 건 나약하다는 의미잖아 다른 사람이 내가 우울증이라는 걸 알면 날 어떻게 보겠어? 절대 내가 우울하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그나마 웃고 있어야 날 좋아해 줄 거야. 웃지 않는 나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 세상에 날 진정으로 이해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하다 못해 하소연할 사람도 없다고.' 그들은 진짜 모습을 감춰야만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과거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었다가 무시당했거나 상처를 받았던 경험이 있을 확률이 높다. 사실 그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는 흔한 일이지만 가면성 증후군을 겪는 이들은 그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경우다. 마음의 빗장을 걸어버린 그때부터 그들은 불안이나 고통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따로 돌보지 않아도 알아서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친구의 비밀 상담소가 될지언정 자신의 속마음은 조금도 털어놓지 않는다. 털어놓고는 싶지만 친구에게 부담이 될까? 선뜻 시도하지 못한다. 나는 마음을 주로 물에 비유한다. 흐르는 물은 때로는 맑고 투명하고 때로는 탁하고 더럽다. 사람의 마음도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한다. 자꾸 자신을 억누른다면 흐르는 물을 댐으로 막아 저수지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감정이 들어올 수는 있으나 나갈 수는 없다. 조금씩 수위가 높아진 우울한 감정이 넘치기 시작했다면 댐은 언젠가 무너지고 말 것이다.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아봐야 한다. 친구도 좋고 가족이나 상담사, 혹은 아예 모르는 사람이어도 좋다. 가슴이 답답해서 응어리가 쉽게 풀리지 않을 때 그 사람을 찾아가서 하소연이라도 해보자. 그 사람이 당신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당신 마음에 고여 있는 물은 다시 흐르게 해 줄 수 있다. 그러니 혼자 끙끙대며 자신을 꾸짖고 벌주며 살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이 웃고 싶지 않을 때는 웃지 않으면 좋겠다. 우울하거나 기분이 나쁘면 그것을 표현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상류 심생 외모는 마음에서부터 생겨난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지, 가치관, 심리 상태, 직업을 통해 겪어온 모든 흔적이 얼굴에 새겨지게 되죠.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전히 팽팽한 피부, 잘난 이목구비의 얼굴보다는 교양, 지혜로움, 자신감, 인자함이 배어 있는 잘 늙어가는 얼굴이 더 멋있어 보이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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