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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

당신이 플라시보다, 내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가?

by J____H 2023.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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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각만으로도 우리 몸과 건강의 물리적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가 배우는 것, 우리가 경험할 것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말들, 우리에게 주어진 설명에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 이 모두가 우리의 의도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대단한 의도를 가지고 어떤 일을 한다면 우리는 자연이 더 나은 결과를 얻게 된다. 요지는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것을 왜 하고 있는지 더 많이 알수록 어떻게 할 것인지가 더 쉬워지고 더 효과적이 된다는 것이다. 변화하는데 가장 힘든 일은 어제 한 선택을 오늘은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일이 그렇게 힘든 이유는 습관적, 자동적으로 같은 행동을 하게 하고 그래서 같은 것들을 경험하게 하며 오래된 정체성을 둘러싼 같은 감정을 재확인하게 하는, 그 동일한 선택을 부르는 동일한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그 순간 곧바로 불편함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존재의 새로운 상태는 낯설기 마련이다. 몰랐던 것이기 때문이다. 비정상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닌 것 같은 느낌도 드는데 이는 실제로 그것이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불확실한 것 같고 더 이상 그 익숙했던 자아의 느낌을 기대할 수 없으며 그런 상태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편하다면 사실 그 순간 우리는 이미 변화의 강에 발을 담근 것이다. 미지의 땅으로 들어간 것이다. 더 이상 과거의 자하로 존재하지 않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과거의 자아와 새로운 자아 사이에 틈을 건너야 한다. 그냥 왈츠를 추다 보니 어느새 새로운 성격이 되어 있더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새로운 성격이 되는 일에는 시간이 걸린다. 변화의 강에 발을 들여놓을 때 옛 자아와 새 자아 사이의 빈 공간이 너무 불편해서 사람들은 대부분 그 즉시 다시 과거의 자아로 돌아가 버린다. 무의식적으로 이거 별로야 불편해 혹은 기분이 좋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 혹은 자기 암시를 받아들이는 순간 또다시 그 오래된 선택들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된다. 변화의 강을 건너는 것이 사실은 옛 자아의 생물학적, 신경학적, 화학적 심지어 유전학적인 죽음이라는 것과 그래서 불편한 것임을 이해하고 나면 변화를 위한 힘이 생기고 강의 반대편에 시선을 둘 수 있다. 우리가 그런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가 사실은 우리 뇌의 구조에 반복적으로 새겨진 오래된 자세, 믿음, 인식을 해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잠재의식 속의 습관과 행동이 생물학적 차원에서 진정으로 변하고 있으며, 그로써 우리 몸이 세포 수준에서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지금 부모를 비롯한 이전의 세대들로부터 받은 유전자들을 수정하고 있음을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한껏 고이 되어 목표에 집중할 수 있다. 그렇게 변화의 강을 지나는 때를 영원히 어두운 밤을 지나는 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말하자면 불사조가 스스로를 태워서 재가 되는 과정과도 같다. 새로운 자아가 태어나려면 옛 자아가 죽어야 한다. 당연히 그런 일이 쉬울 리가 없다. 그래도 괜찮다. 그 미지의 세계야말로 창조를 시작하기에 완벽한 장소니까 말이다.

 

그곳은 가능성의 장소이다.



우리는 대부분 미지의 것으로부터 달아나도록 조건화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빈 공간 혹은 미지의 세계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편안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너무 혼란스럽고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없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빈 공간에 있기 싫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렇게 혼란스럽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사실 더 좋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고의 방법이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곳에서가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의 창조 말이다. 새로운 자아가 태어날 때 그 자아는 생물학적으로도 달라야 한다. 신경 단위의 새로운 연결이 발화해야 하고, 매일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의식적으로 선택함으로써 그 연결을 굳혀야 한다. 그리고 같은 경험을 습관이 될 때까지 반복하는 방식으로 이 연결을 강화시켜야 한다. 새로운 경험을 충분히 해서 화학적으로 새로운 상태에 우리도 감정적으로 익숙해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존재 상태를 새로운 방식으로 바꾸는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유전자들이 발현되어야 한다. 길고 어두운 밤이 지나고 새 새벽이 다가올 것이며 불사조가 잿더미 속에서 다시 살아날 것이고 우리는 새로운 자아를 발명할 것이다. 새 자아의 육체적, 생물학적 표출은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변형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당신이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사람들과 같은 일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이 같은 경험을 이끌고 같은 경험이 같은 감정을 일으키고 같은 감정이 같은 방식으로 같은 유전자에게 같은 신호를 보낸다면? 과거의 렌즈를 통해 삶을 인식하고 같은 신경 구조물이 야기하는 같은 조건들에 같은 마음으로 반응하는 한 당신은 이미 결정된 매우 구체적인 유전적 운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과 삶에 대해 당신이 믿고 있는 것, 그리고 그 믿음에 따라 당신이 내리는 선택들이 계속 같은 유전자에 같은 메시지를 보내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보를 받아 새로운 방식으로 점화될 때에만 세포는 같은 유전자를 수천 가지의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그때 몸도 바뀌게 된다.

 

우리는 외부 세계의 모든 요소들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우리 내면에 많은 것들은 통제할 수 있다.



당신의 믿음, 인식, 외부 환경과 관계하는 법, 이 모두가 당신 내면의 환경에 영향을 준다. 유전적 운명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당신은 이미 프로그래밍된 생물학적 몸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다. 당신은 당신의 잠재력을 풀어줄 잠을 통의 구멍에 맞는 열쇠를 찾기만 하면 된다. 생존 모두의 감정들은 뇌와 몸의 균형을 깨뜨림으로써 최상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유전자들의 불을 꺼버리거나 하향 조절해 버린다. 두려움, 공허감, 화, 적대감, 초조감, 비관, 경쟁심, 걱정 같은 감정은 건강에 필요한 적당한 유전자의 신호를 보내지 못한다. 실제로 그 반대이다. 그런 감정들은 투쟁 혹은 도주 반응을 위한 신경체계에 불을 켜 우리 몸으로 하여금 응급 상황에 대비하게 한다. 이때 우리는 치유를 위한 생명 에너지를 잃게 된다. 어떤 일을 성사시키려고 애쓰는 것도 비슷한 결과를 부른다. 애쓴다는 것은 무언가를 바꾸려고 한다는 뜻이고, 따라서 애를 쓰는 순간 우리는 그것에 맞서게 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고군분투하며 결과를 얻어내려고 애쓴다. 그런 일도 생존 감정이 그렇듯 우리를 불균형 상태로 빠뜨린다. 그래서 더 조급해지고 더 낙담하게 되며 불균형 상태는 더욱더 커진다.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에서 요다가 루크 스카이 워커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한다. 아니면 하지 않는다. 두 가지뿐이야. 애를 써본 단은 없어. 플라세보 반응도 마찬가지다. 애쓰는 건 없다. 단지 인정하느냐, 아니냐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주는 부정적인 감정들에 지나치게 익숙한 데다 그 감정들을 과거에 많은 사건들과 곧잘 연결시키기 때문에 그런 감정들을 느끼는 순간 우리 몸은 바로 과거의 조건 속에 갇히고 만다. 여기서 과거의 조건이란 건강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그때 아무리 새로운 정보가 들어와도 당신의 유전자는 새로운 방식으로 작동할 수 없다. 과거가 미래를 몰아낸 셈이다. 한편 감사와 같은 감정은 가슴을 열어줄 뿐 아니라 몸속의 에너지를 낮은 호르몬 센터들에서 새롭고 높은 곳으로 끌어올린다. 감사는 암시 감응력을 높이는 가장 강력한 감정 중 하나이다. 감사는 우리가 감사할 사건이 이미 일어났다고 몸에게 감정적으로 가르친다. 보통 우리는 원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감사하기 때문이다. 실제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감사의 감정을 끌어낼 수 있다면 당신의 몸은 미래의 사건이 실제로 이미 일어났다고 혹은 지금 일어나고 있다고 믿기 시작할 것이다. 감사의 감정을 품고 그것을 분명한 의도와 연결 지을 때 우리는 그 일을 감정적으로 경험하기 시작한다. 그때 우리의 뇌와 몸이 변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철학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우리의 몸이 화학적으로 알게 하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현재에 있으면서 새로운 미래 속에 있게 된다. 그때 우리는 우리를 과거에 묶어두는 구태, 의연한 감정들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그때 우리는 고양된 감정을 이용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스트레스 호르몬의 집중포화로 애고가 균형을 잃게 되면 분석적 마음이 대단히 활발해지면서 과도한 자극을 받게 된다. 이때 분석적인 마음은 더 이상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반에서 작동하게 된다.

 

우리는 지나치게 분석적이 된다.



그리고 애고는 극도로 이기적이 되어서 뭐든 자신이 먼저여야 만족한다. 그것이 애고의 일이기 때문이다. 애고는 우리의 정체성이 보호되려면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느낀다. 애고는 결과물에 대해 힘을 발휘하고 싶어 하고, 안전한 상황을 확보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미리 말해준다. 그리고 익숙한 것들에 집착하고 보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억울해하고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한다. 희생자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애고는 미지의 상황이란 위험한 곳으로 보고 어떻게든 피하려고 한다. 애고에게 미지란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중독적인 감정의 요구들을 충족시킬 수만 있다면 애고는 무슨 일이든 해서 힘을 기를 것이다. 애고는 자신이 원하는 것만 생각하고 그것을 가장 먼저 얻기 위해서는 어떤 험한 일도 불사할 것이다. 애고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싸우고 거짓말하고 교활해지고 영악해진다. 따라서 스트레스가 많은 때일수록 당신의 분석적 마음은 바로 그 순간 당신이 느끼는 감정 속에 더 철저히 갖춰 당신 삶을 분석하게 된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사실 당신의 의식은 진짜 변화를 부르는 잠재의식적 마음의 작동 체계로부터 더 멀어진다. 그때 당신은 감정적이었던 과거로 당신의 삶을 분석하는 것이다. 그 문제에 대한 대답이 과거의 감정 속에 있을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이때 당신은 익숙하고 제한적인 화학적 상태 안에 갇혀서 더욱더 고심할 수밖에 없다. 상자 밖으로 나가서 생각해야 하는데 상자 속에서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때 하는 생각은 같은 감정을 다시 창조하고 따라서 당신의 뇌와 몸의 질서를 더욱더 무너뜨리게 된다. 스트레스 감정을 극복하고 다른 마음의 상태로 삶을 바라볼 때 좀 더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분석적인 마음이 강해지면 새로운 결과에 대한 암시 감응력이 낮아진다. 왜 그럴까? 곧 응급상황에 맞닥뜨릴 것 같은 순간에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가능성들을 음미하고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생각을 믿고 그것이 마음껏 펼쳐지게 두고 그것의 자신을 내어 맡길 때가 아닌 것이다. 신뢰할 때가 아니라 생존 가능성의 최대 값을 알기 위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가늠하고 그렇게 해서 자아를 보호할 때인 것이다. 다시 말해 미지의 것으로부터 도망가야 할 때인 것이다. 그러므로 스트레스 호르몬들이 분석적 마음을 지지할 때는 생각이 좁아지고 새로운 어떤 것을 믿거나 신뢰하지 않게 되며, 생각만으로 믿게 하거나 미지의 것을 기지의 것으로 만드는 암시 감응력이 떨어진다. 당신은 분석적인 마음 혹은 애고를 당신을 위해서 사용할 수도 있고, 당신에게 반하도록 사용할 수도 있다. 요점은 삶을 끊임없이 분석하고 판단하며 모든 것을 일일이 따지고 든다면 옛 프로그램들로 돌아가는 운영 체계 속에 들어가 새로운 프로그램을 깔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암시를 받아들이고 믿고 그것에 자신을 내어 맡길 때에만 의식적 마음과 잠재의식적 마음 사이에 문이 열린다. 그때 그 정보가 자율신경계에 신호를 보낼 수 있다. 그러면 그 즉시 자율신경계가 모든 일을 알아서 할 것이다. 믿음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 다음 앞서 설명한 대로 고양된 감정으로 에너지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의 몸이 그 변화를 인식하게 해야 한다. 당신 몸이 생물학적으로 재조직되는 방식이나 그 시기를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분석적인 마음을 가동한다는 것이고, 그러면 당신은 베타파 상태로 돌아가게 되며, 이는 암시 감음력을 떨어뜨린다. 그보다는 최종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 결단의 에너지 혹은 진폭이 당신 뇌 속의 견고한 프로그램과 당신 몸속에 감정적 중독보다 더 커질 때 당신은 과거보다 더 커지고 당신 몸은 새로운 마음에 반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 진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새로운 존재 상태에 새로운 에너지를 느낀 그 순간 당신은 당신 몸에 새로운 정보를 보냈다. 당신은 고무되었고 익숙한 휴면 상태에서 벗어났다. 생각만으로 당신 몸이 그 과거 상태에서 사는 데서 벗어나 새로운 미래에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때 몸이 마음을 좌우하는 일을 멈추고 당신이 마음을 좌우하게 된 것이다. 당신이 믿음을 바꾼 것이다. 모든 질병은 주파수가 낮아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스트레스 호르몬을 생각해 보자.



우리의 자율신경계가 투쟁 혹은 도주 모두에 있을 때는 생존을 위한 화학물질들이 우리로 하여금 에너지보다는 물질이 되게 만든다.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만 실제 한다고 규정하기 때문에 우리는 물질주의자가 된다. 우리는 비상 상황에 대처하느라 세포를 감싸고 있는 생명 에너지를 과도하게 써버리고 우리의 관심은 온통 환경, 몸, 시간 같은 외부 세계로 향한다. 그런 스트레스 반응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장기적으로 몸의 에너지 진동이 느려지고 그 결과 몸은 점점 더 파동이 아닌 입자가 되어 간다. 원자, 분자, 화학 물질들이 서로 공유하는 의식, 에너지, 정보가 줄어든다는 말이다. 그 결과 우리는 물질 상태에서 물질을 바꾸려고 헛되이 노력하게 된다. 몸으로 몸을 바꾸려고 보람도 없이 애쓰게 되는 것이다. 눈을 감고 외부 세계의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과 그 속의 사람들과 물건들, 그리고 당신 몸에 대한 주의에서 잠시 벗어나 보자. 그렇게 잠시라도 시간을 벗어나 존재한다면 당신은 양자 관찰자로서 익숙한 삶에 보내던 에너지를 거둬들이고 미지의 가능성 영역으로 주위를 돌리게 될 것이다. 당신이 집중하는 곳이 곧 당신의 에너지가 가는 곳이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는 삶에 계속 집중하면 당신의 에너지는 그 익숙한 삶에 쓰이게 되지만, 시공간 너머에 가능성으로 가득한 미지의 영역에 에너지를 주고, 그리하여 물질이 아닌 의식이 된다면 당신은 새로운 경험을 끌어들이게 될 것이다. 명상 상태로 들어갈 때 자유 의지를 가진 당신의 주관적 의식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의식과 하나가 될 것이고, 그때 당신은 가능성의 씨앗을 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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